큰 고양이 (w. 이설)
딱, 딱, 딱―
너른 마루에 옆으로 누워 손톱으로 소리를 내고 있자니 고양이가 냉큼 흙 묻은 발을 들이밀었다. 완전히 저를 어미로 생각하는지 이제는 서슴없이 다가와 얼굴을 부비기도 한다. 그래, 그 꼴이 퍽 귀여워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눈앞에서 대롱대는 호리병을 좋은 장난감마냥 툭툭 건드리며 제법 이도 드러내고 하악질을 한다. 이대로 있다가는 수도를 떠날 때에도 데리고 가게 생겼다. 혼자서도 제법 사냥은 하는 모양이지만 사람에게 정을 줘버렸으니 말이다. 아아, 이리 자꾸 눈에 밟히면 가만히 볼 수만 없는데.
그것은 비단 짐승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었다. 마들가리는 저 문 밖에서 쩔쩔매는 아이가 또 고개만 끄덕이는 것에 슬쩍 미소를 지었다. 참 요령도 없는 친구다. 오죽하면 저도 설이 벙어리인줄만 알았겠는가. 간신히 입을 열면 “괜찮아요.”라는 말만 연달아 4번이나 하고 가고.
그 날 이후 마들가리는 설이 말하는 것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고 약 1주일이 지난 지금, 그가 들은 말이라고는 “괜찮아요,” “모르겠어요,” “안 해요”밖에 없다. 그마저도 안 한다는 말은 도아가 분통을 터뜨리는 말로 지나가듯 들었다.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는 어린 아이 같았다. 다만 어린 아이라면 마구 아무 말이나 하면서 스스로 길을 찾아갈 것을, 설은 모르니 입을 꾹 닫아버리는 것이 답답한 노릇이고.
그 사이 또 일방통행의 대화를 끝마친 설이 대문을 넘어 들어왔다. 마들가리는 고개를 받치고 있던 손을 휘 저어 인사를 했다. 설도 인사를 하고는 마들가리가 옆으로 길게 누운 마루에 발을 올렸다. 고양이가 작게 울었다.
“물이라도 한 잔 마시겠소? 그리 아무 말도 안 하면 오히려 목이 탈 텐데.”
“…….”
설이 그 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달라는 건가, 표정을 볼 수가 없으니 알 길이 없다. 마들가리는 제멋대로 해석하고는 지나가던 고용인을 불러 물 한잔을 부탁했다. 아, 다행히 이번은 맞게 찍었나보다. 설이 배시시 좋은 기색을 내비쳤다.
“물을 가져왔습니다.”
“고맙소이다.”
아니, 나 말고. 저기 저 친구에게 주면 될 듯한데. 마들가리가 턱으로 가리키자 설이 쭈뼛 잔을 받았다.
“더 필요한 것이 있으신가요?”
친절하게 묻자 설이 눈에 띄게 굳었다. 입을 꾹 다물고 눈만 깜빡이고 있으니 설의 생각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고용인은 얌전히 서서 그의 말을 기다렸다. 마들가리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그 어색한 두 사람의 옆을 지켰다. 어쩔까, 도와줘야 하나? 그는 슬쩍 고개를 들었다. 설은 도움을 청하기라도 하듯 그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싱글벙글 웃기만 할 뿐이었다. 마들가리도, 고용인도 가만히 있으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던 설이 몸을 웅크려 앉았다.
“풉.”
마들가리는 순간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두 사람의 눈이 동시에 마들가리를 향했다. 아, 아아. 미안하오. 그는 어색하게 헛기침을 했다. 그러나 간신히 수습한 실소가 또다시 작게 터졌다. 마들가리는 소매로 급히 입을 가렸다. 두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았겠지만, 사람이 많아지자 제 뒤로 숨어 동태를 살피는 고양이의 자태와 똑같은 그것을 설이 지금 하고 있었다. 작은 고양이, 큰 고양이. 작은 고양이, 큰 고양이. 마들가리는 그만 크게 웃을 뻔 했다. 그래, 이토록 눈에 밟히면 내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다니깐. 그는 큼큼, 소리를 내고는 말했다.
“신경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지만 괜찮아요.”
설이 의아한 듯 몸을 움찔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마들가리가 천천히, 또박또박 말을 한 것이다. 항상 물 흐르듯 술술 말을 뱉던 그인지라 듣고도 따라 하라고 하면 어라, 뭐라고 했었지? 하게 만들던 마들가리였는데. 심지어 말투도 달랐다. 마들가리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고용인이 종종걸음으로 떠나자 설이 멍하니 앉아 웅얼거렸다. ‘신경 써 주셔서….’ 입 안에서만 간신히 나는 작은 소리였지만 마들가리는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그렇지, 잘 하고 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더 크게 번졌다.
이제 한 명이 갔냐는 듯이 등 뒤로 툭 머리를 박아오는 고양이의 털을 쓸었다. 내 눈이 안 보이니 글을 가르칠 수는 없어도 평범한 대화정도는 알려줄 수 있지. 그리고 그건 다 네 덕이다, 요 꼬마야. 살짝 탓하듯 가볍게 코를 툭 치자 작은 고양이가 냐아- 하고 운다. 이 아이가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는 것처럼, 자신도 당분간은 설의 뒤를 따라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