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멘토
달그락. 얼음이 녹으며 내려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손도 대지 않은 커피가 아까웠는지 두온은 잠시 눈길을 줬다가, 이내 서류로 다시 얼굴을 내렸다. 평소와는 달리 몸에 꼭 맞는 양복을 차려 입은 그는, 앞에 앉은 아이가 교복을 입고 있는 것이나 여기가 사내 카페테리아라는 사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입에 문 담배를 재떨이에 두어 번 털어냈다. 그리고는 매끈한 턱을 매만지다가, 아차, 하고 어색하게 앞머리를 넘겼다. 깔끔하게 이마를 깐 머리가 조금 흐트러졌다.
두온의 손에는 지금 저 학생의 정보가 있었다. 김현조, ○○고등학교 3학년, 그리고 안개를 다루는 초능력을 가진 아이. 두온은 그 아래에 팀장이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붉은 펜글씨를 손톱으로 두들겼다. 몇 번이고 밑줄이 쳐져있는 포스트잇에는 [회사에 꼭 필요함!] 이라고 쓰여 있었다. 잘 어르고 달래라는 뜻이다.
현조는 가만히 두온의 눈치만 살폈다. 읽어보라고 준 유인물은 다 읽고 내려놓은 지 오래인데 저쪽은 그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건지, 아니면 귀찮은 건지 이쪽에 관심을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쪽에 안 보이게 파일을 유심히 읽고 있는 남자는 겨우 눈을 돌리나 했더니 커피만 한번 쳐다보고 다시 고개를 내려버렸다. 결국 현조는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저기, 질문 있는데요.”
“네에. 거기 학생. 팜플렛 다 읽었어?”
“아, 네.”
현조는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온은 파일을 탁 덮으며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비벼 껐다. 그의 입가에 즐거운 듯한 웃음이 떠올랐다.
“혼자서 만화 속 주인공인줄 알았는데, 진짜 만화 같은 세계에 들어온 기분이 어때?”
“어……. 아직 잘 모르겠어요. 실감이 잘 안 나요.”
“처음엔 다들 그렇지. 앞으로 매번 교육 받으러 다니고 하다보면….”
그는 잠깐 말을 삼켰다. 하다보면… 연차를 뺏길 거다, 살기 싫어질 거다, 예비군도 아닌데 국가에서 맨날 불러댈 거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은 한결같이 도움이 안 되는 것들뿐이라 그는 슬그머니 말꼬리를 흐리며 헛기침을 했다.
“가끔 그렇게 능력 쓰다가 폭주하는 경우도 있는데, 신고하고 교육 꾸준히 받으면서 훈련하면 좀 나아질 거고. 뭐, 기타 등록 절차나 관리국에 대해서는 팜플렛에 다 나와 있으니 건너뛰고. 아, 질문 있다고?”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초능력자예요? 다?”
“거의.”
“그럼 아저씨는 능력이 뭐예요?”
“음? 초특급 공기청정기.”
현조는 농담하지 말라는 듯한 표정으로 두온을 바라봤다. 두온은 그런 눈길을 아주 익숙하게 받아왔다. 이렇게 큰 회사에 있으면서 능력은 하찮아 보인다는 거지, 그는 그런 시선을 이해할 수 있었다. 솔직히 자기가 봐도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티도 안 나는 능력이었으니 말이다. 두온은 왜 이 애가 자기 담당으로 떨어졌는지 알 것 같았다. 안개를 다루는 능력이라니, 자신만큼이나 멋이 안 나는 초능력이었다. 게다가 고3이니 이걸 활용해서 취직하고 싶은, 정확히는 공부를 안 하고 싶은 마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뭐,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그래서 두온은 테이블에 바싹 몸을 붙이며 미끼를 던져보기로 했다.
“너, 네 능력 별로 맘에 안 들지?”
현조가 움찔하며 반항적인 눈빛을 했다. 아하, 월척이다. 현조는 지난번에도 자기 말고 다른 초능력자가 있느냐고 물었었다. 이번에 한 질문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슬슬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이 능력을 어디에 써먹지? 그 순간부터 자기 능력이 막막하게 보였을 테다. 실생활에서 이용은 거의 불가능 수준, 몰래 자기만의 편의를 위해 쓰는 초능력도 아니다. 안개를 만들어서 대체 뭐에 쓸 건데? 지난번처럼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는 정도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신기하다’로 끝날 일이다. 그마저도 친구들은 팀장님들이 기억 조작을 완료했고.
현조는 울컥해서 ‘아저씨도 별 거 아닌 능력이잖아요.’ 라고 대꾸해왔다. 어라, 아닌데. 두온은 딱 저 나이쯤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을 고스란히 말로 꺼내는 아이를 보며 싱글벙글 웃었다. 아저씨는 매일 1등급 공기 속에서 살고, 담배를 카페테리아 한가운데에서 피워도 신고 안 당하고, 남의 담배냄새도 내가 없애줄 수 있고, 지하철에서도 방구 뀌어도 된다. 남들 싫어하는 공용화장실도 아저씨는 다 갈 수 있지롱.
“하지만, 그건 초능력 회사에서 딱히….”
“너 같은 애들 구하러 뛰거나 사고 현장에 파견 나가지.”
그 말에 현조의 눈이 접시만해졌다. “그때 그게 아저씨였어요?” 두온은 그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 현조의 이마에 딱밤을 먹였다. 누구 때문에 연차까지 뺏겼는데 수염 좀 깎았다고 못 알아보다니.
“하여튼. 너 말고 다른 사람들은 더 좋은 능력일지, 멋진 능력일지 신경 쓰이지?”
“윽.”
“이거 하나는 장담할게. 네 능력은 우리한테 꽤 필요해.”
이 이야기를 꺼낸 후로 내내 불만스럽게 앉아있던 현조가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럴 리가 없다, 단지 달래려고 하는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두온은 파일 뒤에 미리 끼워온 블루컴퍼니에 대한 안내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자켓에 꽂혀있던 검은 펜을 들고 찍찍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 봐. 간단히 네 일로 예시를 들자. 만약 네가 안개를 그렇게 짙게 안 뿌렸으면, 학교에 혹시 남아있던 애들이나 주변 길 가던 사람들이 다 봤겠지. 널 업고 나오는 나라거나, 그 이후 처리까지 말이야.”
“네, 네에.”
“본 사람이 남아있으면 비밀 유지가 전혀 안 돼. 당연히 전부 지워야지. 그런데 정신 조작 능력자가 그렇게 많지가 않아. 초능력자 자체도 희귀한데 그 중에서 우리 입맛에 맞는 능력자를 찾기는 더 어려워. 하지만,”
두온은 펜으로 [목격자]들과 [사고 현장] 사이를 벅벅 칠했다.
“아예 처음부터 못 보면 어떨까? 가령, 짙은 안개 같은 게 꼈다거나. 이질적인 것도 아냐. 그냥 중국발 스모그가 좀 있었다고 사람들은 말하려나? 그럼 우린 SNS로 퍼질 것도 걱정 끝, 사진 염려나 기억 조작에 대한 부담도 줄어들겠지. 알겠어?”
두온은 낙서가 잔뜩 된 안내를 잠깐 찌푸린 눈으로 내려보다가, 새 종이를 꺼내서 현조에게 밀어 건넸다.
“나는 네가 이쪽 회사로 들어오면 그 능력, 아주 잘 써먹을 수 있다고 생각해. 그것도 현장 팀으로.”
선택은 언제나 아이의 몫이다. 자기의 꿈을 찾아 가는 사람도 있고, 능력에 대해 함구하며 평생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썩히기엔 아까운 능력이다. 두온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안개를 다루는 능력을 보고 그렇게 이야기할 곳은 이 회사밖에 없을 거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현조는 한참동안 고민에 빠져 손톱 끝으로 종이를 뜯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현조는 두온이 준 안내서를 가방에 챙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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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1. 연차 반납 벌칙에서 이어쓰느라 분량 채우기 무지 어려웠음.
2. 현조는 그냥 눈에 보인게 현종이라서 0 하나 뺐음
3. 한두온:: 일할때는 댄디하고 깔끔한 차림 에 중점을 두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