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컴퍼니(2016)/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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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님 2016. 12. 19. 03:41




 [월요일]

 휴가는 언제 써야 기분이 제일 좋을까? 물론 1년 365일 휴가인 것이 최고겠지만, 잘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제외한다면. 두온은 여러 차례 휴가를 쓰며 만끽해본 결과 “우리 팀에서 내가 제일 마지막으로 가는 휴가”가 제일 기분이 좋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해보자. 처음으로 다녀온 사람은 모두의 부러움을 살 수 있겠지만 대신 앞으로 남들이 하나둘씩 가는 것을 보며 자신이 다녀온 휴가의 기쁨을 잊어간다. 중간에 다녀오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이 먼저 가는 사람을 부러워하며 다녀와서는 동료들의 휴가를 부러운 눈길로 쳐다봐야 한다. 그에 비해 마지막 휴가자는, 다른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며 휴가 가는 게 부럽기는 하겠지만 그 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하나씩 눈에 아로새긴 뒤에 최상의 휴가를 즐길 수 있다. 또한 7-8월의 성수기를 피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한가한 휴가를 보낼 수 있다.

 “조삼모사의 휴가 버전이네요.”
 “사실 그렇죠.”

 ……어쨌거나, 두온은 그런 탓에 가장 인기 있는 휴가 주를 다른 사람들에게 넘긴 뒤 혼자 느지막이 쓰는 것을 좋아했다. 이번에도 그의 휴가가 9월로 미뤄진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두온의 휴가 전 마지막 보고서를 받던 팀장은 “얄미운 자식”이라며 보고서를 책상 위에 내팽개치기도 했다. 

 그러면 어떤가! 무어 대수인가! 두온은 앞으로 1주일은 빵빵하게 놀 것이다. 회사 특성상 연차를 제대로 즐긴 사람이 없다지만 두온의 능력은, 글쎄, 연차를 쓴 사람을 불러낼 정도로 급하게 필요한 적이 별로 없다. 단지 복도에 있던 공기청정기를 사무실 쪽으로 좀 끌어와야 할 정도의 필요성?

 “그러니까 말이죠, 평소에도 거의 무쓸모인 제가 하필 이때 필요할 일이 별로 없죠!”

 두온은 술과, 휴가 내내 집에서 먹을 음식들을 장만해서 기분 좋게 집에 들어왔다. 하루 종일 담배를 피워도 환기 한번 시킬 일이 없다. 이 얼마나 쾌적한 휴가지인가? 그는 티비와, 영화 몇 편을 준비하고, 사둔 책들을 쭉 쌓았다. 이정도면 누가 불러내지 않는 이상 거뜬히 버틸 수 있다. 두온은 흡족하게 웃으며 침대에 몸을 날렸다.



 [금요일]

 “그래, 잘 지내고 있냐?”
 “아-…… 지금 몇 시죠?”
 “아직 안 일어났냐? 게으른 자식. 벌써 5시다, 5시.”
 “평소에 얼마나 굴렸으면 제가 이렇게….”
 “그래, 잘 놀고 있는 거 보니까 다행인데, 설마 내가 너 안부 묻자고 전화하진 않았을 것 같지 않냐? 하하하!”
 “으하하하! …젠장.”




 *


 삐- 삐-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잠시 통제한답시고 쳐둔 바리케이트를 훌쩍 넘자 익숙한 얼굴들이 몇 보였다. 팀장은 평소보다 훨씬 지저분해보이는 얼굴을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왔냐?”
 “아, 진짜 너무한다, 우리 회사.”

 평소 머리가 세팅이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쑤시망태기에, 파르스름하게 자란 턱수염을 벅벅 긁으며 집 앞 슈퍼 나오는 마냥 슬리퍼까지 신고 왔다. 그래도 이런 꼴이나마 나온 게 다행이라는 듯 팀장은 두온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서, 누구 끌어내면 돼요?”
 “어라, 아직 사건 얘기도 안 했는데.”
 “집합 장소 고등학교, 그것도 도심 한복판, 거기에 ‘연차를 쓴’ 제가 필요한 거라면 단순 정화는 아닐 거 아니에요.”

 쩝, 두온은 입맛을 다셨다. 사람 목숨이 걸려있으니 이렇게 달려왔지… 아니기만 해봐라. 두온은 팀장이 건네는 학교 구조 단면을 받아들었다.

 “학생인데, 고3 남자애. 이름은 김현조고 미등록자. 친구들한테 초능력 자랑 하다가 담임한테 들켜서 신고가 들어왔는데 이후로는 이 상태야.”

 팀장은 까딱 학교를 가리켰다. 두온은 단번에 어디가 문제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오늘 안 그래도 안개가 유난히 짙을 거라고는 했는데 저쪽은, 건물의 윤곽만 간신히 보일 정도의 짙은 안개가, 2~3층을 중심으로 스멀스멀 퍼지고 있었다. 하필 안개낀 날에 맞춰서… 된통 잘못 걸린 것 같았다.

 “지금 여기 안개는 보통 안개인 것 같은데, 저쪽은 아직 성분분석 하고 있고. 그 전에 저 정도로 능력을 썼으면 아마 컨트롤 부족으로 페널티 장난 아닐 거다.”
 “만나서 한 대 딱밤 날려도 돼요?”
 “안 돼.”
 “이것은… 횡포….”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있는 대로 투덜대면서 동시에 두온의 눈은 바쁘게 구조도를 살폈다. 지금 안개가 이상할 정도로 뭉친 곳은 4층 미술실과 멀티미디어실, 그 아래로는 2학년 11반에서 13반 정도. 위는 옥상이니 일단 제외해도 될 것 같았다.
 두온은 한숨을 푹푹 쉬며(“내가 왜….”) 구급용 모포와 휴대용 산소 호흡기를 둘 챙겨들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로 모포를 옆구리에 낀 그는 털레털레 중앙 계단으로 향했다.

 “야 한두온, 그쪽 계단보다 저쪽이 빨라!”
 “아니, 미쳤다고 저걸 걸어 올라가요?!”

 두온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소리를 빽 질렀다. 뭐? 팀장은 두온이 두고 간 학교 구조도를 다시 펼쳤다. 1층 중앙계단, 중앙계단. 여기다. 팀장은 손으로 한 지점을 꾹 짚고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외부인용 중앙 엘리베이터…. 어쩐지 단면도를 너무 열심히 본다 했다. 팀장은 이마를 짚었다.



 *


 두온은 의외로 대상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다행히 엘리베이터 소리에 현조가 먼저 구조를 요청한 것이다. 소리가 난 미술실 쪽으로 향하며 두온은 저 애의 페널티가 청각 관련이 아닌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혹시 안개 줄일 수 있냐-!”
 “아뇨!”
 “알았다-!”

 내가 공기청정기지 제습기냐…. 어쨌거나 흡수는 가능했으니까, 그는 천천히 시야만 밝힐 정도로 앞길의 안개를 뚫었다. 빨아들여도 별 문제가 없는 것이 아마 정말로 보통의 안개인 것 같았다. 젠장, 내 연차. 그는 다시금 눈물을 훔쳤다.
 미술실 문을 열자 겁에 질린 학생이 한 명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좋아, 대상 확보. 두온은 슬리퍼를 질질 끌며 현조에게 다가갔다.

 “어디, 나랑 말을 했으니까 청각은 아니고, 나랑 눈 마주치고 있으니까 시력도 아니고, 호흡 정상으로 보이고. 젠장, 호흡기 괜히 챙겼잖아. 어디가 이상하니?”
 “다리… 다리가 안 움직여요.”
 “잘 보면, 멀쩡히 움직이고 있단다. 다리에 감각을 못 느끼는 쪽인가 보군. 업힐래, 안길래?”

 두온은 가져온 모포를 현조의 머리에 덮고 진지하게 물어봤다.

 “업… 업힐래요.”
 “고마워, 사실 나도 다 큰 남자애를 안고 싶지는 않아….”

 진심으로 싫어하는 듯한 목소리에 울상이던 현조가 한순간 풋, 웃는 소리를 냈다.

 “웃어? 웃었냐? 야, 가끔 안아달라는 애들 있으면 얼마나 곤혹스러운지 알아? 여자애도 남자애도 곤란하다고. 차라리 5살 꼬마애면 안 물어보고 그냥 안고 오는데 정말이지…. 구조 매뉴얼 이거 다 뜯어 고쳐야 한다니까….”
 “-아저씨도 그거예요?”
 “그게 뭐야? S.H.I.E.L.D. 같은걸 말하는 거라면, 정답이야. 아, 물론 실제로 그 회사라는건 아니고. 보시다시피 내 머리카락은 튼튼하고 멀쩡하니 잘 붙어있단다, 눈도 안대가 필요 없고….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조만간 누가 찾아갈 건데, 네가 폭주하지만 않았어도 오늘 평범하게 만날 수 있었을 거라고.”
 “…초능력자요.”
 “아.”

 두온은 아이를 등에 업고 끙차, 몸을 일으켰다.

 “음 뭐. 그렇다고 해두자.”
 “아저씨 말고도 더 있어요?”
 “야, 너 나한테 딱밤 한 대 맞을 거 있거든? 조용히 안 하면 지금 당장 빚 갚아줄 거다.”

 현조는 합, 입을 닫았다. 좋아, 두온은 조금씩 흐트러지는 호흡 탓에 몇 번 심호흡을 하고 발걸음을 내디뎠다.



++


1. 이미지게임 벌칙으로 걸려서 연차 반납

2. 당시 미션과 이어져도 될 것 같아서 이어썼다가 미션 분량 없어서 쩔쩔맸다

3. 전투씬 싫어 

4. 딱 이때 회사 실습 끝나고 온 때라서 감정이입 심하게 됐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