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는 쓰레기
3층, 2층, 1층.
다행히 지하까지 내려가지 않은 엘리베이터가 맑은 소리를 내며 위로 가는 불에 빛을 반짝였다. 지각과 지각이 아닌 자를 고르는 마지막 엘리베이터는 거의 아비규환이었고―가망이 없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재빨리 계단 문을 박차기도 했다― 그 가운데 뻔뻔하게도 두온은 항상 아슬아슬하게 타는 멤버였다.
“좋은 아침, 좋은 아침.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이제 막 출근인데 녹초가 된 사람들과는 달리, 회사 코앞에서 출근하는 주제에 느긋하니 한 자리를 차지한 두온이 아는 얼굴들에 하나씩 인사를 했다. 아, 그리고 언제나 힘들어하는 멤버는 정해져 있었다. 이를테면 1호선 출근자라거나. 승주는 이 시간에 보이면 녹초고, 안 보이면 자기 자리에서 녹초가 되어있었다.
“오늘도 무사 출근?”
“세이프, 입니다. 헤엑.”
이야, 그거 잘 됐네. 오늘은 능력도 안 쓰고 왔잖아? 두온은 제 일처럼 싱글벙글 웃으며 작게 손뼉을 쳤다. 승주는 출구에서 회사까지 달리느라 턱까지 차오른 숨을 겨우 진정시키고는, 새카만 눈을 들어 날카롭게 노려봤다.
“맞아, 이따가 점심시간까지 서류 넘기셔야 하는 거 알죠?”
“윽.”
두온의 손뼉이 조금 힘을 잃었다.
“점심까지입니다? 점심까지? 저 이따 가지러 가요?”
승주가 4년만에 대리로 승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저런 꼼꼼함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두온은 혀를 내두르고는 ‘알았어, 알았어. 찾아서 내 책상 위에 딱! 올려둘게!’ 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두온은 사실 지금 승주가 말하는 서류가 뭐였는지부터 수첩을 뒤져야했다.
그리고 사실 승주는 내일 점심 전까지 서류가 필요했다.
*
탁, 탁, 탁.
신경질적인 소리가 사무실 안을 가득 채웠다. 눈을 감은 채 두온의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가만히 발을 구르던 승주는 흘끗 눈을 떠서 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몇 분이 지났지? 한참 전에 서류를 받으러 온 승주를, 두온은 ‘잠시’라는 말로 세워둔 채 서류철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두온의 서류 파일은 아무 체계도 없이 뒤죽박죽으로 쑤셔 박혀 있었다. 승주는 가만히 두온의 어깨 너머로 그걸 하나하나 뒤적이는 걸 지켜보다가 참지 못하고 한 장을 낚아챘다.
“이거 지난 분기 거잖아요?!”
“어?!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괜히 한 장 더 만들었었네요.”
두온이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이 주먹을 쥐며 말했다. 그건 선물로 드릴게요, 이면지입니다. 두온이 엄지를 올리자 승주는 약간 다른 의미로 주먹을 쥘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러다가 점심시간이 오버될까봐 연신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손에 들린 [이면지]는 승주의 손 안에서 무참히 구겨졌다. 탁, 탁, 탁, 승주의 발소리가 점점 간격이 짧아졌다.
“솔직히 말해봅시다. 뭐 찾는진 알고 찾는 거죠?”
“큼. 들켰네요.”
“아니, 두온 씨….”
승주는 이마를 짚었다. 점점 배가 고파졌다. 지금쯤이면 점심때 뭘 먹을지 고민하고 있었을 텐데.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때에 찾으러 올 것을 그랬다. 그때, 두온이 뭔가 발견하고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
“찾았어요?”
“이거! 이거! 전에 굴러간 샤프 뒷뚜껑인데 겨우 찾았네요. 여기 있었구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고! 승주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두온은 정말로 신이 나서 서랍까지 열어버렸다. 안 돼, 승주는 저 서랍을 한번 열면 닫기 전까지 신제품(내지는 전리품) 자랑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뚜껑을 잃어 서랍행이 된 샤프를 찾아 뒤적거리던 두온은 난데없이 은색의 짧은 원기둥같은 걸 꺼내들었다. 길고 검은 플라스틱이 90도 간격으로 세로로 붙어 있었는데, 그는 히죽거리며 그걸 승주에게 내밀었다.
“맞아, 대리님 이게 뭔지 알아요?”
“…뭔데요.”
“그 왜, 얼마전에 회사 앞 카페에서 이벤트 한다고 사람들 줄 세워서 룰렛 돌렸었잖아요?”
“네.”
“그때 그 줄 세우던 빨간 벨트요.”
두온이 완전 비장하게 벨트를 당겼다. 익숙한 붉은 벨트가 지익, 딸려 나왔다.
“……아, 형!”
“으하하, 이거 완전 레어템이라고?”
“대체 이런걸 왜 갖고 있는 건데요!”
“그때 부러져서 길바닥에 뒹굴고 있길래 주워왔지.”
“주웠으면 카페에 돌려 주라고요!”
“에이, 어차피 부러져서 못 써요. 주운 사람이 임자야.”
두온은 이거 가지고 놀면서 기다려요, 라며 승주의 손에 친절하게 차단봉을 쥐어줬다. 승주는 허망하게 손에 들린 것을 보다가, 검은 플라스틱을 죽 잡아 뽑았다. 안전벨트마냥 잘 늘어났다…. 그는 지금이라도 ‘사실 서류는 내일까지 필요한 겁니다’라고 사실을 말하고 밥을 먹으러 가는 게 나을지, 아니면 이렇게 된 이상 서류를 받아가는 게 나을지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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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시츄는요! 두온씨가 입사한지 11년이고 승주는 4년이니까 그래도 꽤 오랜 시간 같은 회사를 다녔으니 잘 알거 같구요ㅋㅋㅋ 서류를 받으러 두온씨 책상에 갔더니 한참 못찾아서 서류 찾는 두온씨 앞에서 기다리며 점점 성질내는 승주는 어떨까 싶습니다ㅋㅋㅋ 회사니까 처음엔 저기 두온씨..?하다가 아나 형!! 이래버리는 승주도 좋을거 같고요ㅋㅋㅋㅋ 기다려봐, 하면서 도라에몽 책상서랍ㅋㅋ에서 별거 별거 다 꺼내선 이거 갖고 놀고 있어하며 능청스럽게 승주 손에 쥐어주는 두온씨가 보고싶네요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