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서 피어오르던 더운 기운이 한풀 꺾이고 대신 선선한 저녁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쳤다. 운혜는 햇볕에 말리던 약초들을 갈무리해서 주머니에 쓸어 담았다. 이정도면 꽤 오래 쓸 수 있겠다, 그녀의 입에 은은하게 미소가 걸렸다. 일을 돕던 산다화도 뿌듯하게 저가 채집한 것들을 들어보였다.
“스승님, 이제 다 마른 거죠?”
“그렇습니다. 들어가서 빻아보도록 하죠.”
네! 산다화가 힘차게 대답했다. 그리고 마루에 폈던 돗자리를 접는 사이, 대문이 경칩 소리를 내며 열렸다. 어딜 다녀오는지 늦은 외출을 끝내고 돌아온 마들가리가 둘을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마들가리님!”
“여기서 뭘 하고 있소?”
“약초를 말리고 있었어요.”
“호오, 말린다고 그만 두던가?”
마들가리의 뜬금없는 말에 산다화가 마루를 때리며 깔깔 웃었다. 아, 둘의 이 장난은 언제 들어도 자리를 피하고 싶게 만든다. 운혜는 시선을 떨구고 양 눈 사이를 꾹꾹 눌렀다. 그런 그녀의 눈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마들가리의 복사뼈가 약간 붉은 기를 띠며 살짝 부어있었다.
“마들가리님, 발목은 왜 그러시나요?”
“응?”
마들가리는 운혜의 말에 제 발을 들어 살피며 잠깐 생각하더니, 곧 ‘아아.’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아까 나무뿌리에 걸려서 잠깐 접질렸소이다.”
“괜찮으신 겁니까?”
운혜는 기겁을 하며 그의 발을 살폈다. 하지만 마들가리는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별로 크게 삔 것도 아니고, 하룻밤 자면 괜찮을 걸세.”
과연 그럴까, 운혜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보아하니 저건 하룻밤 지나면 더 부어오를 녀석이다. 산다화는 둘 사이에서 눈치를 살피고는 ‘역시 스승님의 말이 맞겠지?’하고 마들가리를 설득할 준비를 했다.
“그렇다면 됐습니다.”
그래요! 치료를 받으셔야죠! 라고 소리치려던 산다화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운혜를 바라봤다. 운혜는 쉿, 손가락을 폈다. 매번 다쳐도 저 혼자 끙끙 앓는 마들가리 때문에 운혜는 어디 한번 치료 없이 버텨보라고 맘을 독하게 먹었다. 크게 아파봐야 정신을 차리고 제때제때 치료를 받으시겠지. 산다화는 뭔지는 몰라도 운혜가 그렇다면 그럴 것이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하루.
이걸 어떻게 한다?
마들가리는 발목을 주무르며 생각했다. 정말 잠깐 삐끗했을 뿐이라 심지어 본인도 잊고 있던 발목이 너무 아팠다. 복사뼈부터 시작한 통증이 뼛속까지 시려서 어제는 심지어 자다가 깰 정도였다. 이상하다, 이렇게 심하게 접질린 게 아니었는데. 하루 지나면 가라앉을 줄 알았던 발목이 이렇게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다(동시에 그는 이 말을 꼭 산다화에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목이라도 대야 하는가? 이럴 땐 어떻게 하지. 그는 이리저리 발목을 돌려보며 고민에 빠졌다. 운혜에게 갈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기는 했지만 어제 저가 호언장담하던 말이 떠올라 망설이게 됐다. 또 지금 가면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라고 하며 등짝을 한 대 맞을지도 모른다.
…아니, 괜찮지 않을까,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잠깐 하루야 통증이 남아서 열이 좀 날 수도 있지. 그는 종종 온찜질을 해주던 운혜를 떠올리고 물을 뜨겁게 덥혔다. 뜨거운 물주머니로 발을 감싸자 고통이 좀 가시는 듯도 하다. 그래, 이렇게 달래주면 금방 가라앉겠지. 굳이 운혜를 귀찮게 할 것까지도 없다. 그는 물주머니를 얹은 김에 어제 못 잔 잠을 좀 자야겠다고 일찍 드러누웠다.
-그리고, 이틀.
큰일이 났다.
어제는 그래도 겉보기엔 멀쩡하던 발목이 이제는 퉁퉁 부어서 손도 못 대게 아팠다. 어제 발목에 찜질도 하고, 이리저리 돌리며 운동도 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살짝 손을 대봤더니 반대쪽보다 곱절은 부어서 땅을 디디면 화끈거리고 아주 비명을 지른다. 어제까지는 그냥 시큰대는 정도였는데 이젠 밥 먹으러 잠깐 방 밖으로 나가는 것도 고민하게 될 정도였다. 그는 결국 고용인을 불러 간단한 식사를 가져다달라고 부탁했다.
“괜찮으신가요?”
고용인이 문득 물주머니에 싸인 발목을 봤는지 물었다. 마들가리는 밥상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찜질이라는 것이 하루 이틀 만에 효과를 보는 것이 아니니, 괜찮소이다.”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사흘.
마들가리는 벽을 짚고 한 발로 뛰는 어릴 적 놀이가 얼마나 현명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쿵, 어린 아이들의 그것과는 달리 묵직한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쿵, 이상한 소리에 고용인 한 명이 달려 나왔다. 어제 밥을 가져다 준 사람이었다.
“의원을 부를까요?”
고용인이 놀라 물었다. 마들가리는 창백해진 얼굴로 손을 저었다.
“지금 보러가고 있소.”
아, 그러시다면야. 고용인은 부축이라도 해주려는 듯이 그의 팔을 잡았다. 마들가리는 그 호의를 거절할 여력이 없었다. 그는 운혜의 방을 가리켰다.
어쩌면 유언이라도 남겨야 하는 건 아닐까, 오늘이 제삿날이 될 것만 같은 기분에 그는 슬그머니 배어나오는 땀을 닦았다.
-------
산다화 양을 조금 빌렸습니다.. u.u)
운혜와 관계 심화 로그였는데 미션 쓰느라 너무 늦어서 미리별님이 잊으셨을..것...같ㅇ......
게다가 막상 쓰고 보니 운혜가 별로 안 나오네요 으아아 (도망감)
그리고 사실 이건 관계로그를 빙자한
생활보건 가형 [지문에서 남자가 잘못 처치한 것을 모두 고르시오] 문제랍니다.
┍ <보기>━━━━━━━━━━━━━━━━━━━━┓
┃ ㄱ. 온찜질 ㄴ. 발목 운동 ㄷ. 혼자서도 잘해요 놀이 ┃
┗━━━━━━━━━━━━━━━━━━━━━━━━┛
①ㄱ ②ㄴ ③ㄱ,ㄴ ④ㄱ,ㄷ ⑤ㄱ,ㄴ,ㄷ
정답은 사문 의원님께서 발표하실 겁니다
'별이 흐르는 강(2015) > 별강 로그(관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뚜리 (산다화) (0) | 2015.09.29 |
---|---|
새벽, 아침 (유월) (0) | 2015.09.29 |
잔소리 (사문운혜) (0) | 2015.09.29 |
[사문운혜] 부탁 (0) | 2015.09.29 |
청의 진동 (윤슬) (0) | 2015.0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