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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15.09.29 1.
  6. 2015.09.29 슈슈슉
  7. 2015.09.29 마지막 도편(陶片)
  8. 2015.09.29 추억 한 상자 (E)
  9. 2015.09.29 세뚜리 (산다화)
  10. 2015.09.29 새벽, 아침 (유월)

-

별이 흐르는 강(2015)/+ 2015. 12. 7. 02:16




 



 지난밤에는 내내 비가 내렸다.

 마들가리는 발에 밟히는 것들을 하나 집어 들었다. 꽃이었다. -어라, 낙엽이 아니라? 어쩐지 바스락대는 소리 대신에 축축하고 부드러운, 하지만 흙은 아닌 느낌이 든다 싶었다. 갑작스런 찬바람에 우수수 떨어졌나. 그러고 보니 여기도, 저기도, 손닿는 곳은 온통 줄기가 꺾인 꽃 투성이다. 마들가리는 옷자락을 접어 쪼그리고 앉았다. 꽤 익숙한 풍경인데. 최근은 아니고 상당히 오래된…….

 마들가리는 습기를 머금은 꽃을 손으로 비볐다. 산에서 날 리 없는 바다 냄새가 저편에서 밀려왔다. 그는 바람에 묻어나는 짠 냄새를 따라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니까, 그게 언제더라.

 

 

 

 *

 

 

 이렇게 엮으면 되옵니까?”

 

 누이가 작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물었다. 마들가리는 어깨 너머로 그녀가 하는 양을 지켜봤다. 옳지, 그걸 묶거라. 그리 말하는 그의 손도 온통 꽃향기로 가득했다.

 간밤에 바람이 많이 몰아친다 했더니 바닷바람이 쓸고 간 자리에는 갓 피운 꽃들이 가득 융단을 깔고 누웠다. 그리고 마들가리는 꽃밭을 지나치지 못하는 누이를 말리지 못했다. 그래, 이 꽃들로 무얼 하려고? 그가 묻자 누이가 한 아름 꽃을 안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머리장식을 만들고 싶다 하였다. 다행히 그건 마들가리가 할 줄 아는 범주 내에 있었다. 예전에 화관 만드는 법을 배우길 잘했지, 그렇기에 저잣거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꽃밭에서 쭈그리고 꽃을 만지는 다 큰 남자의 모습이 연출된 것이다.

 마들가리는 한때 잠깐 만나던 여성이 알려주던 대로 몇 번 줄기를 꼬고 당겼다. 예전만큼은 안 되는구나, 옆에서 제대로 알려주던 연인이 없는 탓에 기억 속에 남아있던 것에 한참 못 미치는 엉성한 화관이 완성되었다. 누이는 그래도 제법 손을 잘 움직였다. 오히려 마들가리보다도 야무지게 만들고 있었는걸.

 마들가리는 마지막 매듭을 꾹 누르고 누이의 머리 위에 하얀 꽃들이 수를 놓은 왕관을 올렸다. 하지만 그 화관은 목걸이마냥 슥 아래로 빠져나갔다. 너무 크게 만들었나? 머쓱하게 뒷목을 긁자 누이는 그것도 좋다고 배시시 웃더니, 저가 다 만든 화관을 들어올렸다. 고개를 숙이자 머리에 사뿐히 가을꽃이 올라왔다.

 

 이제 다 됐어?”

 

 뒤에서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누이와 마들가리는 동시에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유월도 만들어줄까요?”

 그대도 하나 만들어줄까?”

 

 유월의 눈이 가늘어졌다. 대충 그 의미는 '저 바보 남매.'정도가 아닐까. 하기야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쓰고 다니기엔 눈에 많이 띄는 장식이었다. 유월은 그런 것을 달가워하지 않아 보였고. 하지만 마들가리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혼자 안 쓰고 있으면 외롭지 않겠소.”

 

 아니, 별로. 유월은 생각했다. 하지만 마들가리는 아까 한번 실패해서 버려뒀던 무더기를 집어 들었다. , 이렇게, 그는 너무 일찍 끊어져서 차마 머리에 못 쓸 것이라 남겨뒀던 것의 양 끝을 뒤늦게 이어 유월에게 건넸다. 손목에는 넉넉하게 들어갈 정도였다.

 

 이거라도 괜찮소?”

 

 아니, 별로. 유월은 다시 생각했지만 꼭 닮은 두 얼굴이 싱글벙글 웃고 있는 모습에 결국 받아들었다. 다음에 시간이 나면 더 좋은 걸로 만들어주겠소, 마들가리가 신이 나서 말했다. 아마 진심으로 유월이 이()걸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이제 갈까? 마들가리는 누이의 손을 잡았다. 내내 꽃을 만졌더니 옮은 촉촉한 물기가 손에서도 배어나왔다.

 

 

 

 *

 

 

 안 돼, 안 되겠소.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아. 마들가리는 손아래에서 파스스 부서지는 것들에 눈물을 훔쳤다. 

 거의 10년 만에 잡는 거였다. 그때도 잘 만드는 편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눈도 보이지 않았으니 제대로 될 리가 있나. 손끝의 감각에 의존해서 만드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그는 무릎 위에 떨어졌을 잔해들을 휘휘 털어냈다. 옛날 생각이 난 김에 추억에 젖어 만들던 화관은 그 이름을 붙이기도 안쓰러운 자태로 널브러졌다. 다음에 시간이 나면, 그 말은 아무래도 영영 추억 속에 남겨둬야 할 성 싶었다.

 어느덧 냉기를 품은 바람이 세게 불어왔다. 열심히 뭐라도 만들어보려던 사이에 해가 진 모양이다. 마들가리는 그새 차가워진 손을 소매 사이로 넣었다. 해가 지기 전까지 돌아오겠노라 했는데 어영부영 또 늦어버렸다. 으으, 한 소리 안 들으면 좋겠는데. 그는 찌뿌등해진 무릎을 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유월에게 뭐라도 사다줄까, 생각하며 비탈길을 내려갔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그는 다시 꽃밭으로 달려왔다.

 

 

 

 

 *

 

 

 유월은 갑자기 작게 울며 문 앞을 서성이는 고양이의 움직임에 멈칫 장죽을 집어넣었다. 내내 서로 있으나 마나 신경도 안 쓰던 둘이지만 마들가리가 오는 때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저 녀석만큼 확실한 신호는 없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발소리가 가까워지고는 곧 대문이 열렸다. 한 손으로는 옷자락을 말아 쥐고, 뛰어왔는지 숨을 헐떡이던 마들가리가 고양이를 발로 장난스레 건드린 다음 유월을 향해 웃었다.

 

 다녀왔소.”

 늦었어.”

 해가 지는 줄 몰랐지 뭐야.”

 

 마들가리는 한 손을 펼치고 스스로의 눈앞에서 붕붕 흔들었다. ‘그치? 아무 것도 안 보인다네.’ 대충 그런 뜻이었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해 지기 전에 온다고 말이나 말면, 유월은 뚱하니 입을 내밀었다.

 

 거기 든 건 뭐야?”

 

 유월은 마들가리가 옷자락에 담아 그러쥐고 온 것을 가리켰다. 마들가리는 씩 웃고는 보따리처럼 만 것을 열었다. 그리고는 높이 하늘을 향해 천을 튕기자 하얗고 분홍빛이 도는 것들이 솟구쳤다. 한 아름, 뜯어지고 줄기가 끊어진 꽃들이 팔락거리며 눈처럼 떨어지자 그것을 잡겠다고 고양이가 앞발을 실룩였다. 마들가리는 혹시나 묻었을까 머리를 휘휘 털어내고는 유월의 옆으로 와 자리를 잡았다. 웬 꽃이냐고 입을 떼기도 전에 마들가리가 먼저 싱글벙글 웃으며 물었.

 

 예쁘지 않소?”

 

 아니, 별로. 유월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처럼 입을 다물기로 했다.

 저 뒷산에서 발견했는데, 어차피 꺾인 아이들이고 내일이면 다 썩을 것 같아서 그대에게 보여주려 가져왔지. 어떻소? 마들가리가 마치 칭찬을 바라는 것처럼 들떠서 유월의 옆에 앉는 통에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쁘게 생긴 것 두세 송이 정도는 골라내서 말릴 생각이야, 나중에 책 사이에 껴놔도 괜찮고 장식으로 써도 좋고마들가리는 기쁜 듯이 말했다. 유월은 제 눈에는 다 거기서 거기로 보이는 꽃들, 솔직히 말하자면 집 안에 들어온 쓰레기를 보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그의 눈에는 저걸 가져오느라 군데군데 옷에 밴 듯한 꽃물이 더 신경 쓰였다. 그는 옆에 놓인 마들가리의 손을 잡고 코 아래에 댔다. 숨을 들이쉬자 꽃과 풀 내가 물씬 들어왔다.

 

 얼마나 만지다 온 거야.”

 꽤 됐지 아마, 냄새가 심하오?”

 

 마들가리는 뜨끔해서 물었다. 사실 아까 화관을 만들려고 오래 만지고 있기는 했다. 유월은 냄새에 무척 예민해서, 가끔은 없는 사이에 고양이랑 조금만 놀아도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냄새가 난다고 싫어했다. 마들가리는 씻고 오겠다며 자리를 피했다.

 유월은 펄럭이며 사라진 옷자락과, 마당에서 꽃 사이로 뒹구는 고양이를 번갈아 봤다. 그러던 중 유월의 눈에 이상한 것들이 들어왔다. 축축하게 빗물에 젖어서 축 처진 꽃잎들 중에는 서로 묶여서 매듭지어진 것들도 여럿 보였다. 이건 왜 이런 꼴이야, 유월은 몸을 굽혀 꽃 무더기를 손으로 헤집었다. 이걸 보니 뭔가 생각이 날 것도 같고. 최근은 아니고 상당히 오래된…… 무슨 상관이람. 그는 빠르게 생각을 접었다

 유월은 여러 꽃들을 이리저리 뒤집어보고는 허리를 폈다. 그의 손에는 두 송이의 꽃이 들려 있었다. 모양이 썩 예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그나마 꽃잎이 온전한 걸로 세 줄기 골라 마루에 올려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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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꼬르륵, 요동치는 소리가 덜 깬 잠을 조금 밀어냈다. 마들가리는 아직 꿈에 젖은 얼굴로 잠깐 멍하니 있었다. 뒷목이 이상하게 뻐근했다. 마들가리는 왜 머리가 이렇게 불편한지 잠깐 생각하다가 이내 깨닫고는 제 머리통을 받치고 있던 유월의 팔을 위로 밀어냈다. 내 베개가 이렇게 높을 리가 없잖소, 군데군데 단단한 근육이 붙은 딱딱한 베개를 치우자 유월이 몸을 뒤척였다.

일어나나? 마들가리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유월에게선 곧 다시 편한 숨소리만 들려왔다. 마들가리는 유월을 흔들었다.

 

유월.”

 

, 대답인지 잠꼬대인지 모를 것이 나왔다. 마들가리는 또 그의 몸을 조금 흔들었다. 유워얼, 언제까지 잘 거요. 아직 점심도 안 먹었잖소. 으응, 유월이 신음을 하고는 몸을 뒤척였다. 일어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들가리는 불만스레 입을 삐죽이고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다시 풀썩 누워버렸다. 유월이 일어나면 깨우겠지아이는 아까 저가 머리위로 올린 팔 아래에 기어들어가 몸을 붙였다.

 

 

 

2.

 

유월이 눈을 떴을 때엔 이미 해가 중천이었다. 그는 부스스한 머리를 긁으며 일어나려다가, 제 옆구리에 딱 붙어있는 아이를 보고 멈칫 다시 누웠다. 평소에 잠이 많지 않은 마들가리라 이렇게 늘어지게 같이 낮잠을 자기는 또 처음이었다.

 

.”

 

그는 작은 소리로 마들가리를 불렀다. 꼭 감은 두 눈이 잠깐 움찔하더니 눈썹을 찌푸렸다. 유월은 제 쪽을 향해있는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손 아래로 짙은 밤 하늘같은 머리카락이 흩어졌다. 유월은 그 사이에 숨어있던 연한 귀를 살짝 쓸었다. 끄응, 마들가리가 앓는 소리를 내고 잠결에 도리질을 쳤다. 유월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알았다, 알았어. 더 자라. 유월이 장난을 치던 손으로 머리통을 다독였다. 찌푸렸던 눈썹이 제자리로 돌아가 다시 편한 얼굴이 되었다.

유월은 크게 하품을 했다. 아무래도 자신이 일어나면 아이도 금방 깰 듯 했다. 모처럼의 단잠인데 더 자게 둘까, 그는 품에 들어오는 체구를 당겨 안았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스치는 아래로 따끈한 아이의 체온이 기분 좋았다. 유월은 다시 눈을 감았다.

 

 

3.

 

마들가리는 눈을 반짝 떴다. 졸린 기운이 하나도 없고 눈도 쉽게 뜨였다. 깜빡, 깜빡깜빡. 어쩐지 푹 잔 기분이 들어 쭉 아래로 기지개를 한번 켜고는 일어났다. 유월도 마침 잠이 깬 기색이었다. 마들가리는 멀뚱멀뚱 앉아 있다가 유월에게 물었다.

 

좀 춥지 않소?”

.”

꼭 해가 진 것 같아.”

졌어.”

 

유월이 담담하게 말했다. 아까 잠깐 깼을 때까지만 해도 분명 낮이었는데 이제는 짧아진 해가 그새 서산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유월은 당황해서 입을 쩍 벌리는 아이의 턱을 닫아줬다.

 

몇 시간을 잔 거요?!”

나도 모르지.”

 

, . 마들가리가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유월이랑 있으니 이렇게 밤놀이 하는 사람으로 바뀌어 가는군.”

밤놀이?”

낮에 안 놀고 밤에 놀지 않소!”

 

, 밤에 놀이. 유월은 잠깐 놀랐던 자신을 탓했다. 그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유월은 원래 밤에 깨어있는 자인걸. 그는 이리저리 구르며 밤잠 다 잤다고 한탄하는 아이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벌떡 일으켰다. 뭐라도 먹자, 이게 점심인지 저녁인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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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들론.hwp


유들

-설정부터 커플이 되기까지를 중심으로

 

 

 

. 서론

 

20156월 중순쯤 개장한 글/홈페이지형 자캐 커뮤니티 [별이 흐르는 강]은 대명이라는 나라가 서역과 교역을 하며 생기는 일을 기본 뼈대로 잡은 동양풍 판타지로, 조선 말 개화기를 배경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여기에서 신청자는 용과 인간, 두 종족을 허용하였으며 모든 캐릭터는 사냥꾼에 들어왔다는 전제 하에 진행이 되었다.

 

먼 옛날 별이 흐르는 강을 건너 용이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 중 한 무리는 동쪽에 있는 섬에 정착하여 인간들과 나라를 만들었다.

세월이 흘러, 정관 3년부터 시작된 서역인들의 이주로

대명은 일대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괴물이 사람들을 공격했고

괴물을 쫓아 사냥하는 이들이 생겼으니 사람들은 이들을 사냥꾼이라 불렀다.

 

별이 흐르는 강, 이하 별강은 총 네 번의 미션을 통해 스토리가 정리되었으며 한 번의 이벤트로 20159월에 엔딩을 맞았다.

그런데, 고자들만 모인 줄 알았던 별강에 스토리가 모두 진행되고 익명란이 생기며 일대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마음 속에 관캐를 품고 있었던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으로 밝혀지며 몇 명은 다들 고자인 줄 알았는데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런 별강에서, 이벤트까지 다 종료된 후에 1호 커플 [유들]2호 커플 [다빈]이 탄생하였다.

본고에서는 1호 커플인 마들가리와 유월의 프로필과 각자의 스토리, 둘의 관계를 파헤쳐보고 나아가 튀김님에게 필자의 앤캐 자랑을 좀 하고자 한다.

 


. 본론

 

1. 마들가리

 

(1) 프로필

 

180cm, 주변 색이 약간 이지러지게 보일 정도로 짙은 색의 남색 머리. 머리는 뒷목을 덮는 정도의 길이로 뒷머리보다 옆머리가 조금 더 길어 쇄골까지 능히 닿는다. 특히 오른쪽 머리는 길고 가늘게 가슴께까지 늘어뜨려 쇠로 된 작고 노란 머리장식으로 묶고 있다. 앞머리는 눈을 보일 듯 말 듯 하게 간질인다. 머리카락 때문인지 피부가 허옇게 보인다. 앞머리 때문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눈은 자세히 보면 아래로 쳐진 눈꼬리가 길게 늘어져 있고, 눈동자의 초점이 맞지 않는다. 눈동자의 색은 하얗게 타버려 투명에 가까운 연한 녹두색으로, 세로 동공은 이제 흔적밖에 남지 않았다.

 

사슴의 그것과 같이 생긴 검붉은 가지가 왼쪽 귀 위로 삐쭉 솟아있다. 10cm의 길이로 끝까지 솟지 못하고 중간에서 흉하게 뚝 잘려 있다.

비쩍 마른 몸을 넉넉한 품의 옷으로 감추고 있다. 추위를 타지 않는 듯 어떤 날에도 옷을 겹겹이 껴입고 있으며, 꽤나 거추장스러워 보일 정도로 소매가 길다. 주로 연한 물빛의 긴 도포를 즐긴다. 하지만 머리에 단 장식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장신구나 다른 장식을 볼 수 없다. 깔끔하고 단정한 편. 어깨에는 문장을, 허리춤에는 호리병을 차고 있다.

 

그렇다고 한다.

쾌활하고 잘 웃고 장난기가 많다. 나이는 60, 외양은 20대 후반이라는 설정이다.

 

(2) 스토리

마들가리는 물을 다루는 능력을 가진 용으로, 괴물에게 누이를 잃은 후 괴물이 어떤 놈들인지 알고자 사냥꾼에 들어왔다. 누이가 괴물을 보고 패닉에 빠져 능력이 폭주해 터진 불에 시력을 잃었지만 용의 능력으로 별 불편함은 없이 살고 있다(지만 앤캐의 얼굴을 못 본다는 사실이 아쉬워 죽을 지경이다). 괴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면 누이의 무덤 옆에 누울 계획이었으나 앤캐가 생기면서 목숨을 연장했다.

 

(3) 특징

누이가 별명 삼아 부르던 [마들가리]를 이름으로 삼고 있다. 나중에 앤캐와 꽁냥꽁냥 수치 MAX를 찍고 백년해로하게 된다면 알려줄 예정이다. 하지만 별 특징 없는 이름이라는 것이 함정이다. “본인의 이름을 싫어한다”, “평범한 고유명사다라는 힌트가 있다.

단 음식이나 육류를 싫어한다. 과일, 야채 위주로 먹는다. 그런데 얼마 전 필자의 식영과 친구에게 자문을 구한 결과 180cm 저체중의 성인 남성이 하루에 사과만 먹고 버티려면 30개인가를 처먹으라고 해서 영양실조로 쓰러지는 설정을 낳았다.

눈이 안 보이는 만큼 주변을 기운으로 느끼고 있어서 자주 피곤해한다. 거기에 악몽으로 잠을 잘 못 자서 상당히 기절잠을 자야 하는 스타일로, 앤캐 덕분에 조금씩 고쳐나가고 있다.

누이가 죽은 날에 생긴 외상으로는 부러진 뿔 장님 화상자국(거의 치료가 됐지만 자기 눈으로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옷을 껴입고 있다) 정도가 있다.

 

 

2. 유월

 

(1) 프로필

 

170 중반, 옷 아래 소년의 몸에는 드문드문 근육이 붙어있다. 직각 어깨와 곧게 뻗은 다리 때문에 언뜻 원래 키보다 커보일 수 있다. 오닉스같은 비늘이 왼쪽 이마에서부터 눈가와 뺨을 덮고 있다. 이때문에 이목구비만 떼놓고 보면 순한 인상인데도 불구하고 무서워 보인다는 듯. 본인이 항상 무표정인 탓도 있다. 또한 왼손등과 척추 부근에도 비늘이 일부 덮이어 있다. 마찬가지로 새까만 머리칼은 앞이마를 가볍게 덮으며 눈썹뼈 조금 위까지 오고, 뒷머리는 짧게 쳐 단정한 모습이며, 약간의 곱슬기가 보인다. 세로동공이기는 하나 홍채가 까매 거의 티가 나지 않는다. (환한 곳 아주 가까이서라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까만 머리칼과 눈, 비늘과 달리 피부색은 연하다. 입술 역시 색이 없는 편. 갓은 쓰지 않지만, 검은색 여름용 두루마기가 살짝 저승사자 느낌이 난다. 낮에 바깥에 나갈 때는 삿갓을 쓴다.

 

몇 달 새 부쩍 키가 커져왔다. 179. 머리를 전보다 짧게 쳐 검고 짧은 머리칼이 이마 위로 흐트러져 있고, 옆뒷머리도 뒤통수를 덮을 정도로만 되어있다. 곱슬기 때문에 조금 뻗쳐보인다. 어디 바람 부는 데 뒹굴고 온 듯한 모습으로 피부는 타지 않아 아직은 다소 소년티가 난다. 검은 옷을 입은 것은 여전하지만, 이전보다 몸에 딱 맞는 형태라 선이 보인다.

 

귀엽다. 검은 비늘이 얼굴을 가리고 무표정해서 잘 드러나지 않는 순한 인상의 소년~청년 과도기라는 설정 자체가 사랑스럽다. 손이랑 등에도 비늘이 있다고 하는데 이건 차차 확인해보도록 하자. 앤오님의 말에 따르면 짐승을 생각하고 만들었다고 하는데, 과연 개나 고양이로 대입해보면 사랑스러워 죽겠다. 어지간한 네발짐승은 다 잘 어울린다. 나이는 현재 37, 외양 나이 18~19. 귀엽다. 마들가리가 도둑놈이긴 하다. 죄송하다. 그래도 아저씨 아닙니다.

프로필에 명시된 성격은 다음과 같다.

 

자기 일 외에는 주변에 무관심한 편이다. 길게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 그럴 때도 있지만, 보통 짤막한 단어로 이루어진 말이나 으르렁대는 소리뿐이다. 인생의 대부분을 혼자서 지내왔기 때문에 혼자가 익숙하다. 웃는 일도 별로 없고 화를 내는 일도 많지 않아 조금 무감각해 보인다. 사실 속으로는 언제나 현상황을 이해하고 파악하고 있으나 티를 내지 않는 것이다. 평소 행동은 주변을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다소 무례할 수 있다. 하지만 의외의 친절을 베풀 때도 있다. 그러나 감사를 받는 것은 어색해한다.

 

귀엽다. ‘의외의 친절이라는 키워드 때문에 마들가리한테 케이크를 선물한 적도 있다. 귀엽다. 전반적으로 검은 분위기, 말을 아끼는 느낌이지만 사실은 장난기도 있다. 귀엽다. 커플이 된 후로는 앤캐에게 어리광을 피우는 모습도 종종 발견된다. 귀엽다.

 

(2) 스토리

유월은 어둠을 다루는 능력을 가진 용으로,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의고 어떤 집에 수양아들로 들어간다. 하지만 곧 그 집에서 남녀 쌍둥이가 태어나고 스물넷의 나이에 집을 나온다(동생은 인간이라고 한다). 10년간 여행을 한 뒤에 동굴에서 끝을 맞으려고 했지만 NPC인 여울을 만나고 사냥꾼에 들어오게 된다.

NPC 여울이 죽으면서 고민 끝에 사냥꾼을 떠나지만, 몇 개월 뒤 시점의 이벤트 [연회]때 잠깐 돌아와서 마들가리의 고백을 받아준다.

 

(3) 특징

6월에 태어나서 이름이 유월이다. 귀엽다. 육류, 주류에 환장한다. 술도 세다. 고기는 날 것을 선호한다.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어둠을 모아서 몸 안에 저장한다. 커뮤의 유일한 여자 밝히는 남캐였다. 키는 180cm까지 클 예정이라고 한다. 훗날 어깨쯤에 사슴 문신을 할까 고민 중이시다. 마들가리에게 비밀로 하고 담배도 피우다가 걸릴 예정.

 

3. 유들

 

(1) 스토리

10년 전, 누이가 태어난 이후 딱 한 번 멀리 달봉에 여행을 나온 마들가리(당시 외양 18~20)와 누이(당시 외양 10~15)는 그곳에서 혼자 여행을 하던 유월(당시 외양 10~15)과 만난다. 타고난 친화력으로 유월을 데리고 잠시 함께한 그들은 달봉을 떠나며 헤어진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NPC 여울을 따라 사냥꾼에 들어온 유월은 마들가리와 재회한다.

같이 밥을 먹기도 하고(유월은 마들가리가 단 것을 좋아하는 줄 알고 의외의 친절을 베풀어서 케이크를 사준다) 훈련을 빙자해 투닥거리며 싸우기도 하며(마들가리는 유월이 정혼자가 있는 줄 알고 유월에게 달라붙던 여자를 쫓아낸다) 정도 정이지만 오해를 오이렇게 많이 쌓았지 쓰다보니까 새삼

하여튼 이런저런 오해가 많이 쌓여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두 번째 관계로그를 짠다. 스토리가 막바지로 치달을 즈음 둘이 술자리를 가지는 스토리로 여기에서 정혼자 오해를 풀었다. 또 이 자리를 통해 유월은 마들가리가 죽을 것을 대충 눈치 챈다. 하지만 별다른 이야기 없이 유월이 사냥꾼을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됐었다.

엔딩 미션 몇 달 후 시점, 사냥꾼들을 위한 작은 연회가 열려 다시 만난 자리에서 마들가리가 고백을 하고 미련을 버리려고 하지만 유월이 그걸 받아줘서 1호 커플이 탄생하게 된다.

 

(2) 비하인드 스토리

이건 8할이 필자의 고자눈새짓이므로 넘어가자......

 

(3) 향후 전개

연회가 끝난 후 마들가리와 유월은 집을 얻어 한적한 마을에서 살아간다. 둘 다 집안일을 오지게 못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시비 하나를 들일 예정이다. 사냥꾼 시절 마들가리가 주워온 고양이를 키운다.

마들가리는 유월이 언젠가는 마음이 식을 거라는 생각 아래 아직 누이의 곁으로 갈 마음을 접지 않은 상태이고, 유월은 마들가리가 그런 사람인 걸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엔딩은 여러 분기점으로 나뉘어 해피, 새드, 앵슷 등등으로 나뉘는데 여기에서는 앤오님한테도 아직 말하지 않은 썰을 몇 풀어보고자 한다.

 

. 해피엔딩

마들가리가 유월과의 생활을 나들이로 취급하는 것을 그만 두는 엔딩이다. 계기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을 해봤지만 마땅한 계기가 없다고 생각하던 중, 유월의 동생들을 떠올린 후 생각해본 엔딩으로, 다시 말해 해피엔딩은 유월의 동생들과 만날 일이 생긴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진행이 된다.

만약 유월의 동생들과 만난다면 마들가리는 유월이 지도를 그렸다거나 하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상당히 무거운 것이겠지. 유월이 왜 혼자 있으려고 했는지, 달봉에서 만났을 때 그 어린 용이 왜 혼자 다니고 있었는지 유월이 답하기 껄끄러울까봐 묻지 않았었는데 새삼 그 이유들을 알게 되며 유월이 어린 시절 비늘이나 능력 때문에 또래 애들과도 잘 지내지 못한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마들가리는 그간 알게 모르게 유월에게 많이 기대고, 함께 있어줘서 고맙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보다는 함께 있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오래오래, 가능하면 평생 유월이 혼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긴다.

이렇게 된다면 마들가리의 긴 방황과 자기학대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며 이 엔딩에서만 본명을 까발리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다. 사실 정말로 별 거 아닌 이름인데 이쯤 되면 밝혔다가 앤오님이 실망할까봐 조심스러운 지경.

 

. 새드 엔딩

유월이 마들가리의 곁에 있으면서 마들가리의 언젠가는 그대 마음이 식겠지마음에 전염이 되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섣불리 헤어졌다가는 마들가리는 개쿨하게 그럴 줄 알았다며 세굳바한 다음에 어딘지도 모를 누이 무덤으로 가서 평생 못 볼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 헤어지지도 못하고 관계가 점점 삐걱거린다.

거두절미하고 결국 유월의 곁에 있던 탓에 아이가 이렇게 됐다는 죄책감에 마들가리가 도망을 가고 죽는 엔딩. 현재 앤오님과 상의로는 이게 진엔딩이다.

 

. 앵슷

-3-(3)-나에서 파생된 엔딩으로 삐걱거리다가 회복을 시켜보자는 엔딩이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정신으로 이런 스토리도 좋다고 어렴풋하게 나온 썰이다. 마들가리가 유월에게 죽지 않겠다고 납득을 시키지 않는 이상 어떻게 진행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

 


. 결론

 

본고를 통해 시험기간과 과제 크리가 닥쳐오면 사람이 어디까지 잉여해질 수 있는가를 다시 한 번 심도 있게 고찰할 수 있었다. 앤캐 자랑과 커플 설명 혹은 썰풀이를 오프로 하는 타입이라서 튀김님께 앤캐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할 방법을 생각하다가 떠오른 정신나간 짓이다. 여러분은 이런 짓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또한 AU에 대한 것은 생략한 것을 이 자리에서 밝히는 바이다.

자캐 커플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더니 그 말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우주고자 션님에게도 이런 날이 오니 고자라고 한탄하는 사람들 모두 희망을 가지기 바란다.

 


. 참고자료

 

별이 흐르는 강 http://riverstar.dothome.co.kr/xe/riverstar

션이 흐르는 강 http://riversyun.tistory.com

앤오님 블로그 http://666jayjay.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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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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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들

2015. 9. 29.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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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별이 흐르는 강(2015)/+ 2015. 9. 29. 18:59







 “안 돼.”

 

 유월이 단호하게 말했다. 마들가리는 충격을 받은 듯 입을 벌리고 눈만 깜빡였다. 유월은 마들가리의 손에 들린 베개를 뺏어서 제 옆에 놓고 툭툭 이불을 쳤다. 한참 불만스레 유월을 보던 마들가리는 결국 어린 연인이 부르는 대로 들어와 머리를 뉘였다. 곧 도톰한 이불이 목까지 덮였다.

 

 “진짜로 능력을 안 써줄 거요?”

 “.”

 

 시무룩한 얼굴에 유월은 재차 대답했다.

 

 “자꾸 내 능력으로 자는 건 자는 게 아니잖아.”

 

 …기절이지.

 유월은 처음 마들가리에게 능력을 쓴 날을 생각하며 회한에 잠겼다. 그러니까 이게 언제였더라. 마들가리가 저보다 한참 잠을 못 잔다는 걸 깨달은 날이.

 

 사냥꾼 일을 할 적에는 몸도 힘들고 능력도 자주 써서 쉽게 곯아떨어지던 마들가리였다. 유월과 비교해도 잠을 많이 잔다고 동료들에게 알려졌을 정도로 자주 누워 쉬던 그인데 사실은 불면증이 있을 줄이야. 오히려 사냥꾼 일을 그만 두면서는 능력도 안 쓰니 더욱 피곤할 일이 없어져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있었다.

 

 내가 재워줄까?

 유월은 그렇게 물었었다. 마들가리는 그 말에 잠시 자신을 다독거리며 자장가를 불러주는 유월을 상상했다. -너 방금 이상한 생각 했지. 유월이 귀신같이 알아채고 물었다. 마들가리는 제 얼굴이 실룩인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유월이 독심술을 쓰는 건 아닌가 의심하며 재빨리 손을 저었다.

 아, 그랬다. 유월의 능력에 오래 닿으면 기력을 뺏겼었다. 일전에 훈련(인지 다툼인지)할 적에도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쓰러지듯 잠든 기억이 있었다.

 평소라면 괜찮다고 넘어갈 수 있었을 테다. 유월이 능력을 쓰면 그만큼 유월도 피곤할 테니 분명 거절했을 일이다. 하지만 역시 수면이 부족해지면 그런 생각이 쉽게 미치지 않는지라, 마들가리는 그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습관이 되며 마들가리는 점점 유월이 없으면 잠을 아예 잘 수 없게 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곤히 잠든 마들가리를 보며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유월도 살살 걱정을 시작할 정도였으니 그 의존도와 중독성이란. 결국 유월은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 자신의 능력에 손을 뻗어오는 부탁을 거절했다.



 마들가리는 뻣뻣한 통나무마냥 꼼짝 않고 누워 이불만 손으로 구겼다.

 “눈 감고 편하게 있어봐.”

 유월이 말하자 마들가리가 퉁명스레 대꾸했다.

 “솔직히 뜨나 안 뜨나 똑같소.”

 (그는 이 와중에, 유월과 둘이 살면 불 끄러 일어날 일은 없겠다고 생각하고 속으로 웃었다.)

 마들가리는 감길 생각을 안 하는 눈꺼풀을 원망스레 깜빡이며 빨리 유월이 잠들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잠도 안 오는데 누워있는 것은 가히 고문에 가까웠다. 차라리 유월이 잠들었을 때 밖에 나가서 밤바람이나 쐬는 것이 좋았다. 유월이 깰 때쯤 옆에서 잔 척을 하며 일어나고, 그렇게 한 3일 정도 지내면 아마 기절하듯이 잘 수 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로는 나가서 술을 마시고 오는 방법도 있고….

 그렇기에 마들가리는 제 가슴 위로 올라오는 손바닥에 정말 기절할 듯이 놀랐다. 하마터면 정말로 독심술이라도 하오?!’라고 소리를 지를 뻔 했다. 하지만 머뭇거리며 올라온 손은 마치 어린 아이를 재우듯이 심장 박동에 맞춰 천천히 그를 토닥였다. 곧 놀라 홉뜬 눈 위로 서늘한 손이 덮였다. 눈꺼풀을 닫은 걸로 만족한 손은 곧 마들가리의 등을 감쌌다.

 

 “……갓난쟁이라도 된 기분이군.”

 “애 재우는 게 차라리 쉽지.”

 

 유월의 진심어린 말에 마들가리는 풋 코웃음을 쳤다. 맞는 말이다, 어린 아이였다면 그와 같은 생각은 하지도 않고 얌전히 수마에 빠졌을 테니. 그는 다독이는 유월의 손을 꼭 잡고 이불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는 저도 손을 뻗어 유월을 마주 안았다.

 

 “알았소, 노력해보겠네.”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으응. 자도록 해보겠소.”

 

 마들가리는 유월의 손에 깍지를 꼈다. 그래, 언제까지고 잠을 안 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언제까지고 유월의 능력에 기댈 수도 없다. 그는 속으로 다짐했다. 잠이 들 때까지 이 손을 놓고 일어나지 않겠노라고.

 그는 살짝 유월의 볼에 입을 대고 잘 자라고 속삭여줬다.

 

 

 

 -

 

 

 유월은 끙끙 앓는 소리에 문득 잠에서 깼다. 어슴푸레한 달빛이 아직 들어오고 있었다. 아직 밤인데, 그는 문득 팔을 뻗어 차가운 베개를 만지고는 살짝 이불을 들었다. 어두운 가운데에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식은땀을 흘리는 마들가리가 보였다.

 악몽을, 꾼다고 했던가. 그는 마들가리를 깨우려던 손을 주저했다. 지금 깨면 또 못 자고 괜히 밖에 나갔다가 오겠지? 유월은 잠깐 고민한 끝에 손 대신에 어둠을 펼쳤다.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뱀 같은 어둠이 땀을 식히자 곧 마들가리의 숨소리가 고르게 변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유월은 생각하며 깊은 잠에 빠진 연인을 품에 안았다.

 내일 일어나서 처음 듣는 말이 어제는 아무 꿈도 안 꾸고 푹 잤다는 말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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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 수준입니다 조각글도 민망하다







1.

고개를 숙였다. 손에 닿은 온기가, 이상하리만치 뜨거웠다. 그는 제 손에 닿은 것이 뭔지 잠깐이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적어도 그가 예상한 건 어색한 피함 혹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치는 무심한 대응이었다(슬프지만서도, 만약 혐오를 받았다면 차라리 납득하기 쉬웠으리라). 유월의 성격으로는 아마 없던 일로 치겠거니, 그래서 더욱 시원하게 털어낼 수 있었던 것인데. 몇 년 전 여울의 뒤를 따라 들어온 날부터, 유월은 정말로 제 예상대로 움직여준 적이 없다. 그는 설핏 웃을 뻔 했다. 이토록 당황하지 않았다면 아마 정말로 웃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만 놀라 손을 뿌리치지도 못한 채 적막이 흘렀다.

나를 놀리려고 작정한 게로군.

그는 어느 날의 장난스럽던 유월을 떠올리고 그리 생각했다.

 

 

 

2. 

연회가 끝났다.

수많은 갈림길들이 언젠가는 또 땅 위에서 겹치길 바라며 모두들 제 길을 다시 떠났다.

우연히 마들가리와 유월이 같은 방향으로 떠난 것을 빼면 꽤나 조용한 작별이었다.

 

 


3.

짧은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집어보던 마들가리가 한숨처럼 뱉었다.

 

“앞머리는 다시 길러야겠군.”

“왜?”

 

유월이 물었다.

 

“그야, 뜰 수 있는 눈을 감고 있으려면 상당히 신경이 쓰이지. 퍽 귀찮소.”

“흐음.”

 

유월은 ‘그래, 그럼.’ 하고 고개를 돌렸다.

사실은 기억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저 머리가 퍽 마음에 들었었는데. 뒷머리가 조금 더 길면 아마 그때와 똑같을 것이다. 그는 슬그머니 다시 눈을 옮겼다.

 


 

4.

“한 며칠, 어딜 좀 다녀오려고 하는데.”

“안 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옷자락을 잡혔다. 마들가리는 그 어린 아이같은 행동에 살짝 웃어버렸다. 내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그리고 그대가 이토록 불안해 할 줄 알았더라면 부지소종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는 것을.

 

“내 설사 계섬월을 만나더라도 꼭 돌아올 테니 너무 걱정 말게.”

“어딜.”

“따라오면 안 되오.”

“어디 가는데.”

“금방 올 테니까….”

“어디 가냐고.”

 

불신에 가득 찬 눈초리가 따끔따끔하게 꽂히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정말인데. 마들가리는 저를 잡은 손을 조심스레 떨쳤다. 힘을 준 손은 의외로 순순히, 그러나 불만스레 떨어져 나갔다.

 

“…누이의 무덤을 다녀오려고 하네.”

 

언젠가는 유월도 데려가겠지,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아직은 할 말이 많이 남아 있었다. 내 이야기가 폐막되지 않은 것에 대한 변명들을, 미련을 털고자 했건만 그 자체가 미련으로 남아 무너졌던 끈들마저 새로이 탑을 쌓은 것에 대한 사죄를.

 

 

 

 

5.

“그 아이가 바라는 건 그런…(유월은 눈살을 잠깐 찌푸렸다)게 아닐 거야.”

“나도 알고 있소.”

 

속죄라는 이름의 얄팍한 자기 위안이었지. 마들가리는 빙긋 웃었다.

이 나들이가 길어지면 아마 누이는 좋아할 터이다. 다만, 차마 스스로가 이 자유를 못 견디어 속이 쓰렸다. 유월을 두고 갈 수 없는 마음과 누이를 찾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하루에도 열백번씩 가슴을 할퀴었다. 


마들가리는 저를 붙잡은 손을 찾아 쥐었다. 그로서는 알 수 없는 이 아이의 감정이 끝나면 다시 수레바퀴가 구를 것이다. 젊은 날에 속삭이는 사랑이 얼마나 덧없이 스러지고 또 다른 곳을 향하는가.

 

그때까지 조금만, 조금만 더. 그는 유월 몰래 답답한 숨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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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이 깊어갔다창을 넘어 소슬한 바람이 취기에 달은 분위기를 쓸며 코끝에 닿았다겨울이구나새삼 손을 비볐다속은 불이 붙은 마냥 뜨거운데 손과 잔은 계절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그냥그런 날이었다평범한 어느 겨울이다친한 사람들끼리 오랜만에 모여 두런두런 말을 나누며 대작하는함께 지낸 일들이나 떨어져 보낸 사이의 일들을 나누며 추억을정을슬픔이나 기쁨 따위의 것들을 꺼내 보이는 평범한 날이었다내일 날이 새면 남을 사람과 떠나는 사람이 또 다음을 기약하며 등을 보일 터이니 그간의 회포를 풀고 또 앞으로 생길 것을 미리 풀며 서로 보듬는.

 ‘마들가리는 제 뒷모습이 영영 걸음을 돌리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혹은 그렇게 되길 원했다)어쩌면 다음 만남 때에는 저의 부재를 누군가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다(그는 그렇게 되길 원하고 있었다)하지만 세월이 흐르며점차 연락이 끊어지고 몇몇을 빼고는 어디 사는지 알 수 없게 될 때 즈음 가서는어렴풋이 그런 용이 있지 않았던가기억 안 나?’하는 정도로만 회자되길그것이 그를 향한 유일한 제문이 되었으면 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짧은 앞머리가 드러내는 이마에 눈송이가 조심스레 발을 디뎠다잠깐 차가웠던 우레는 곧 물방울로도 화하지 못한 채 사그라들었다그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아무 의미도 없는 행동이지만 그는 이런 맥락의 것을 퍽 좋아했다)옆에 둔 잔에 사박거리는 눈이 술과 손을 마주잡고 색을 풀어가는 것이 느껴진다한 송이또 한 송이.

 이상하게도 그 조그마한 액체의 움직임을 하나 둘 세면서그제야 속으로 모든 것을 온전하게 내려놓았다내려놓았다라니스스로 정한 것을 언제부터 짐 취급을 했다고무의식중에 쓴 표현에 허탈한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어쩌면 항상 속으로 생각하던 막연한 것이 다가와서 벌써이렇게 빨리라는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네가 기억하던 모습을 만들고 싶다는 것도연회에 참석한다는 것도 결국 핑계에 불과했나보다. 1년 반이나 먹어온 마음은 거의 햇수로2년을 꼬박 채우고서야 완전히 의지 앞에 배를 보였다.

 

 안에서 웃고 떠드는내리는 눈발에 들뜬 사람들이 느껴진다벽 하나를 사이에 둔 채 그 모습소소한 습관나눈 대화들과 추억을 하나씩 꺼내 보드라운 손을 쓰다듬었다어디선가 낡은 상자가 딸깍 소리를 내며 열렸다.

 눈을 감고상자의 것들을 하나씩 잡았다어떤 것은 따스했고어떤 것은 유독 조용했으며가끔은 발버둥치는 것도 있었다쉬이조금씩 달래며 그 모든 것을 하나씩 곱씹어 보았다언젠가 부모님이 그랬듯이누이가 그랬듯이이번에는 내가내 발로 떠나는 것이다정리할 시간이 있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축복인가가만히 앉아 묶인 기억들을 어루만졌다어느새 차곡차곡 속으로 삭이던 것들이 조금씩 힘이 빠지며 묶여있던 매듭을 풀었다길게 늘어진 끈은 곧 검은 바닥 어딘가에 닿아 스러질 것이다.

 휘장처럼 드리워졌던 공포가두려움이 문을 열자 이상하게 마음이 후련했다떨던 손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몇 년은 묵었던 응어리가 천천히천천히 숨에 뱉어져 겨울바람을 타고 사라져간다한참을 더 꺼내고서야 속에 빈자리를 고동소리가 채우기 시작했다자리가 넓어진 마음을 무대삼아 큰 소리로 울렸다.

 

 그리고

 한 개가,

 이제야 마주볼 용기가 생긴(혹은 가리고 있던 다른 불안들이 모두 사라진지금에서야 고개를 들었다보기 싫어서꺼낼 수 없어서 계속 파묻었던 것을 조심스레 올렸다.

 …따스했다손을 대면 끔찍한 화마가 되어 오장을 다 태울 줄만 알았던 것이 이토록이나조각조각 나서 뿔뿔이 흩어졌던 사금파리가 얼기설기 붙어 그새 하나의 마음이 되어 버렸다실체가 되었다손에 잡힐 것만 같았다괴로워하고 몸부림치던나는 덧없이 사라지지 않겠노라고 애타게 울던 것이 해살같이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남은 건 없었다피할 것도가릴 무엇도 남아있지 않았다.

 


 

 등 뒤로 문이 열렸다누군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옆자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리자 자박자박발걸음 소리가 다가왔다.

 속에서 꼭 쥔 마음이 이상하리만치 차가워졌다이미 오래 전에 식은 술잔을 괜히 한번 건드리고는입술을 꾹 깨물었다온기를 주던 조각들이 심장 곳곳에 파편처럼 박힌 것만 같았다입을 열자 아까 사라진 줄만 알았던 끈들이 아지랑이처럼 일었다.

 

 “여보게.”

 “.”

 “내가 말이야.”

 

 그럼에도 차마 못 할 말이었다.

 

 “그대가 참한 처자랑 혼례를 한다고 하면꼭 납폐를 맡고 싶었소.”

 “뭔 소리야.”

 “거짓말일세.”

 

 그런데도.

 

 “내 그대에게만 귀띔을 하자면영영 산에 들어가 부지소종(不知所從)할 생각이네.”

 “거짓말은 안 한다더니.”

 “이번엔 진실이오.”

 

 그리 말하고는 습관처럼 눈을 꾹 감았다언제나처럼 아무 의미도 없는 행동이었다아니그래좋아앞이 보이는 자도 눈 딱 감고 한다는데어차피 앞도 못 보는 자가 무얼 그리 망설이는가마들가리는 세게 볼을 쳤다옆에서 가만히 하는 양을 지켜보던 유월이 그 소리에 물끄러미 보는 것이 느껴진다마들가리는 얼얼한 볼에서 손을 떨어뜨렸다답답하게 속에서 부피를 늘리던 것들이 그 간극을 놓치지 않고 입을 멋대로 움직였다.

 

 “좋아하오내가 그대를좋아하고 있어뭐라 말을 꾸미려 해도 전부 남녀 간의 사랑을 속삭이는 밀어라 감히 이 혀에 담을 수가 없군.”

 

 유독 빠르게 말을 쏟아내자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조각들이 파스스 흩어졌다개중 몇 개는 마모되던 끝이 티끌을 날렸다정말마지막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차마 못 했을 말들을.

 

 “알고 있소그대는 아직 어리지더 넓은 세상을 보고 많은 것을 느끼며 다양한 사람을 만날 걸세그러니꿈에 그리던 여자도 만나서 그대가 가족을 꾸리고 정착하길 바랄 뿐이네.”

 

 미련을 남기기 싫다.

 이 세상에누군가의 기억 속에조차 흔적을 남기기 싫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먼저그는 차가운 무덤가의 풀들을 떠올렸다항상 갈 적마다 등을 축축하게 대고 가만히 미리 잠들어보던 땅을.

 그곳에 눕는 상상을 했다천천히 말라서 덮치는 수마에 쓸려 내려갈 것을 그려봤다가까워지는 역사의 모습에 두려움이 덮쳐도 도망칠 힘조차 없을 순간을 어렵지 않게 만들어냈다.

 이상하게 그 자리에 남는 것이 있었다작은 마음이전하지 못한 조각들이남아서는 안 될 비석처럼 못 박혀 있었다. 악몽 끝에 종종 찾아와 위안을 주던 비석은 어떻게 해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유월이 이 마음을 받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그렇기에안간힘을 써서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것을 풀었다.

 

 작은 파문이 일렁였다.

 저 아래 바닥에 닿는 소리가 간신히 났다.

 

 “그대에게 언젠가는 형 소리가 듣고 싶기도 했는데, 역시 무리일 것 같소! 대답은 하지 않아도 괜찮네

 …혹시나 해서 말인데이 말 역시 진심이오.”

 

 이 순간만은유월의 표정이 보이지 않아서 그렇게 다행일 수 없었다.

 

 “자리를 오래 비웠으니 객은 이만 들어가 보겠소이다.”

 

 첫눈이 소복하게 쌓인 잔이 싸늘하게 손에 들어왔다눈은 아직 그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언젠가는이 눈도 반드시 그칠 것이다.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되길 원했다.)







BGM : Marchen Waltz - Sere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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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장을 뒤지던 손이 무언가에 닿았다. 딱딱하고, 네모난… 이건 상자로군. 팔을 깊숙이 넣자 간신히 그것을 꺼낼 수 있었다. 마들가리는 습관처럼 궤를 후 불었다가 날리는 먼지에 얕은 기침을 했다. 아마 오래 이 자리에 있었던 듯했다. 하긴, 그들이 어릴 적에 숨긴 것들이라고 했으니. 지나간 세월만큼 위에 층이 올라갔을 테지.

 어디, 여울과 마루와 왕의 보물을 한번 볼까. 마들가리는 미소를 띠고 상자의 빗장을 풀었다. 끼이익, 낡은 소리를 내며 궤가 오랜만에 입을 크게 벌렸다. 

 마들가리는 안으로 손을 넣어 소복하게 쌓인 것들을 만졌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몇 개는 뾰족한 부분이 있어 손이 따가웠다. 마들가리는 크기가 제각각인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더듬어봤다. 


 안에는 종이학이 한 가득이었다. 



 “…여울과 마루와 왕이 한자리에서 이걸 접고 있었다고?”



 마들가리는 목을 울렸다. 얼핏 만져 봐도 상당히 많은 수의 종이학이다. 서툰 솜씨로 접힌 것도, 삐져나온 부분 하나 없이 완벽하게 날개를 편 것도 있다. 그 셋에게 정말로 이런 시절이 있었단 말인가, 상상하니 즐거워졌다. 그는 아마도 여울이 접었을 거라 추정되는 깔끔하고 작은 학을 손바닥에 올렸다. 

 그래, 그대들은 무슨 소원을 빌며 이것들을 접었소?



 “…여기 보물 하나 찾았소, 마루!”



 마당 쪽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상자의 입을 닫고는 얌전히 기다리던 꿈들을 옆구리에 단단히 끼워 눈밭에 발을 디뎠다.






------


보물찾기에서 가장 먼저 찾았던 보물... 조각글 수준이지만 꼭 써보고 싶었어요. 처음 쪽지를 보자마자 든 생각은 아마 이런 마음>


마들가리는 궤를 열고 절을 했다

먼지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학이 녯날처럼 낡았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ㅠㅠ ㅠㅠㅠㅠ ㅠㅠㅠㅠㅠㅠㅠ 셋이 숨겨둔 보물이라니 ㅠㅠㅠㅠ (가슴ㅁ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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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다화와 마들가리 관록 출연을 흔쾌히 맡아주신 관계 교집합 사문운혜와, 빌려주신 미리별님께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둘은 들어올 때부터 조금 이상했다.
산다화는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가사를 구성지게 꺾고 있고 마들가리는 옆에서 가련한 여편네마냥 소매로 눈물을 찍고 있었다. 살아가기 어렵구나 살아가기가 어렵구나(行路難 行路難) 갈림길도 많은데 지금 여긴 어디인가(多岐路 今安在)−……. 마들가리는 그런 산다화에게 빽 소리를 쳤다. 이제 그만해요 여보! 어떻게 잠든 앤데 또 깨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의 손에는 깔끔하게 비늘 정리가 된 물고기가 들려 있었다.

운혜는 그 모습을 보고 이내 손질하던 약초로 고개를 돌렸다. 저 둘이 저러는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뭘. 




세뚜리
(with, 산다화 from:사문운혜)



따닥거리며 불티가 날리는 아궁이 바깥으로 물고기가 노릇노릇 구워지는 냄새가 난다.
운혜는 얼결에 둘 사이에 껴서 그들이 잡아온 것을 함께 먹게 됐다. 그녀는 불씨를 뒤적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 괜찮다는 그녀의 사양은 버려진 강아지 같은 두 사람의 한바탕 상황극과 함께 밤하늘 저 너머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은 거라고는, 
 
“스승님, 오늘 가리님이랑 뭐 했는지 들어보실래요?”
“이런, 너무 무거워서 아마 못 들지 않겠소?”

…와 같은 둘의 대화뿐이었다. 운혜는 할 말을 잃고 둘의 대화가 공처럼 오가는 것을 지켜봤다. 

“헌데 우리는 영 낚시에는 소질이 없나보오.”
“맞아요, 가리님이 막 몰았는데도 큰 건 요리조리 빠져 나가더라고요. 저희한테는 코빼기도 찾을 수가 없어요. 소(少)질도 아니고 극소(極少)질 급?”
“제대로 된 사냥꾼들은 대체 어찌 그리 잘 잡을까. 강에 대고 ‘모여라!’ 하고 소리를 치나?”
“‘이 몸의 발 아래로 집하압!’은 어때요?”
“‘이리 오시게!’ 같은?”
“오, ‘이리 오시게!’가 좋은데요? 위풍당당해요.”
“다음번에 낚시를 나가면 꼭 해봅세.”

잘들 논다. 잠깐 한 이야기가 끝난 틈을 타 운혜는 다 익은 생선 두 꼬챙이를 내밀었다. 어찌나 둘이 말을 잘 주고받는지, 이 이야기가 끝나는 기미가 보이자 그만 당극의 관객이 된 마음으로 박수를 칠 뻔 했다. 아주 가만히 보기만 해도 기력이 다 빨릴 지경이다. 

“두 분, 만담도 좋지만 좀 드십시오.”
“만담은 좀 과하지 않소?”
“천담 정도면 모를까요.”
“…드시죠.”

운혜는 뭘 기대하는지 듬뿍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돌아보는 두 남녀를 싸그리 무시하고 제 몫의 생선을 집었다. 
이번 건 각운이 잘 맞았다고 생각했는데, 마들가리가 툴툴대며 뜨거운 생선을 함 베어 물었다. 적어도 먹는 동안에는 조용하시겠거니, 운혜는 내심 다행으로 여겼다.
그때, 갑자기 마들가리가 외마디 비명과 함께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이고!”
“왜 그러세요, 가리님!”

운혜도 놀란 눈으로 마들가리를 쳐다봤다. 가시가 큰 것이라도 있었나? 
마들가리는 곧 무릎을 치며 역성을 냈다.

“어멈아, 생선이 짜구나!”

뭐요?

“아이고, 어머님. 이게 그게 아니고….”
“에잉, 쯧쯔. 내가 아주 며늘아기를 잘못 들였어.”
“말씀이 너무 지나치세요, 어머님!”
“시끄러워! 누가 네 어머님이야!”
“당신은 내가 이런 말을 듣는데도 가만히 있을 거예요?!”

운혜는 씹던 생선을 뱉을 뻔 했다. 제가 뭐라고요? 

“아이고 내가 이런 사람을 믿고 시집을 왔으니 내 팔자야!”

산다화는 뒷목을 잡고 뒤로 넘어가는 시늉을 했다. 어이쿠야, 마들가리는 재빠르게 넘어가는 뒤를 받쳐 들고는 카랑카랑한 척 흉내를 내던 소리를 애절한 곡조로 바꿨다.

“스승님!”

언제 또 제자가 되셨습니까, 운혜는 벙찐 눈으로 시도때도 없이 내용이 바뀌는 2인극을 봤다. 그 와중에 둘은 생선도 잘 챙겨먹고 있었다. 

“가리야… 사실… 난 네 아버지란다….”
“안 돼…!!!!!! 눈을 뜨시오! 잠들면 죽소!”

이 둘은 사실 어디 대회에 나가려는 것은 아닐까? 문득 그녀는 그런 생각을 했다. 어느새 그들은 저 멀리 설산을 오르던 두 방랑자가 되어 끈끈한 우정극을 펼치고 있었다. 
운혜는 묵묵히, 그래도 맛 하나는 끝내주는 생선을 다시 씹었다. 물론 생선은 전혀 짜지 않았다. 
포기하면… 편했다…. 




-----------

산다화와의 관계 [만담 콤비]였습니다! ...는 정말 개그가 생각이 1도 안 나서 난항을 겪었던... 수우님은 완전 알차고 차지게 쓰셨는데 전 왜 이렇게... ㅠㅠㅠㅠㅠ
읽으면서 싸늘하게 굳으신 분들 풀어져라 얍얍.. ;▽;)9

뭔가 제3자의 시선으로 싸늘하게 보고 싶었는데 산다화랑 마들가리랑 동시에 관계가 있는 분이 운혜밖에 없더군요! 다시 한 번 빌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별님!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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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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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의 자리는 밤이 한참 더 깊어서야, 어디서 부드럽게 들려오던 귀뚜라미 소리마저 새벽이슬로 사라질 즈음 파했다. 저 산 너머부터 파랗게 물든 공기 사이로 두 남자가 비틀거리며 입구의 발을 부딪쳤다. 

 차가운 바람이 달은 볼을 스치자 한 남자는 좀 정신이 드는 듯했다. 곧 지난밤의 걷힌 기운을 고스란히 담은 눈이 제 빛을 찾고는, 일행의 거의 감긴 눈꺼풀에 닿았다. 그는 저만 한 일행을 부축하여 골목 사이로 걸음을 옮겼다. 



 새벽, 아침




 3. 

 오시(午時) 쯤의 내리쬐는 햇살에 마들가리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마셨지.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는 꽤나 잘 마시는 편이다. 제 주량 이상으로 마시는 일도 드물뿐더러 상당히 천천히 잔을 비우는 탓에 파한 자리에 혼자 남기가 다반사였다. 그러니까, 이게 대체 얼마만의 일이더라. 


 솔직한 심정으로는 반가운 옛 친구와 대화의 안줏거리로 술을 마신 셈이다. 본디 그의 성정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즐기기는 했어도, 또는 그렇게 보이더라도 남들보다 항상 배로 정신을 곤두세우고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모처럼의 소중한 친구와 어쩌면−아마도−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술자리였으니 평소보다 기꺼운 속이었을 터이다. 

 또 동시에 그의 갈피를 못 잡는 마음이 낳은 허함을 달래는 것도 있었을 게다. 반가운가? 씁쓸한가? 혹은 보고 싶지 않은가? 이 자리를 피해야 하는가? 그는 늘 답이 없는 수수께끼들을 즐겼지만 이번만은 영 힘이 들었다. 그 사이사이 짧은 간극이 침묵으로 얼굴을 드미는 순간에 저절로 잔을 들었으니 그 다음날의 두통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는 물을 갈구하는 속을 달래고 기억을 되짚었다. 유월과 서로 부축하며 돌아와 펴지도 않은 자리에 풀썩 쓰러진 것과, 그 전에 나누던 대화들을. 




 1. 
 빈 병이 상 위를 점점 채워 나갔다. 마들가리는 무거운 팔을 들어 한 병을 더 주문했다. 유월은 작게 딸꾹질을 하며 마른안주를 손안에서 굴렸다.  

 “…있지,”
 “그래, 있지.”
 “너는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

 평소와는 달리 조금 풀린 목소리가 기운 없이 한숨처럼 나왔다. 그 말에 마들가리의 손에서 잔이 미끄러질 뻔했다. 그는 손을 흥건히 적신 술을 등 뒤로 털어 버렸다. 다행히 유월은 눈치 채지 못한 듯했다. 마들가리는 보이지 않는 눈을 꾹 감았다. 

 “너희 남매는 말이야….”

 푸우, 단내 나는 숨이 잠깐 말을 끊었다. 

 “그나마, 내 가족이 되어 줬어….”

 그렇게 외롭게 살면서 처음으로 가족처럼 느낀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이제 영영 볼 수 없게 되었다. 남은 한 사람까지 그렇게 된다면, ……. 유월이 웅얼거렸다. 그러지 말아줘, 너까지 죽지는 말아. 
 마들가리는 막 상에 올라온 병을 연거푸 부었다. 그는 순간 유월에게 무슨 말실수는 하지 않았나, 유월이 제 생각을 알고 저러나 했다. 그는 차마 뭐라 답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말없이 잔만 기울였다. 차가운 액체가 헛구역질을 누르고 불처럼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한참 바닥을 노려보며 웅얼거리던 유월이 갑자기 고개를 홱 들었다. 

 “그러고 보니 무덤은.”
 “으응?”
 “무덤은 있을 거 아니야. 어디에 있어?”

 누구의 무덤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마들가리는 타버린 집 근처 양지바른 곳에 도도록하게 솟은 누이의 잠자리를 떠올렸다. 유월은 성묘라도 올 셈인가.

 “암, 있고말고.” 
 “그럼….”
 “…자네가 있으니 참 좋군. 이렇게 내 누이의 무덤을 물어보는 사람도 다 있고.”

 마들가리는 또 한 잔을 비웠다. 

 “그거 알고 있나? 내가 사냥꾼이 되고 누이에 대해 말한 건 여울과 마루 앞에서 뿐이야.”
 “왜?”
 “뭐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얘기하고 다니나. 다 아픈 사람들인데 괜한 동정을 사기는 싫어서.”
 “…….”
 “그래서 여울과 마루는 내심 이런 쪽으로는 신경을 써주는 모양이더라고…. 그럴 것 같아서 말을 아끼려고 한 건데 말이야. 면접에서 숨길 수는 없지 않나.”
 “다른 말로 둘러댈 수도 있잖아.”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네.”

 여울 앞에서는 거짓말을 잘 못 하겠던 탓도 물론 있지만 그가 거짓말을 피하는 탓도 있었다. 유월은 안주를 입안에 털어 넣으며 술술 거짓말을 하고 다니는 마들가리를 생각해 봤다. 그리고는 그 안 움직이던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 

 “그래, 안 어울리네.”
 
 마들가리는 “그래,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여 맞장구를 쳤다. 그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2.
 “얼굴을 만져 봐도 되나?”

 난데없는 그 말에 가여운 유월은 그만 아까운 술을 뱉을 뻔했다. 이런, 조심하게 그려. 원흉인 자는 도리어 태연했다. 

 “…얼굴은 왜?”
 “자네가 어떻게 자랐는지 궁금해서.”

 살짝 풀린 눈이 솔직하게 답했다. 나기를 장님으로 태어난 자들은 손으로 사람의 얼굴을 가늠하고 생김새를 대충 짐작한다고 들었다. 그에게는 아직 ‘여기가 눈이다’ ‘볼이 매끈하다’ 정도로밖에 파악이 되지 않았지만, 아마 어릴 적의 얼굴을 속으로 그릴 수 있는 유월은 가능하지 않을까. 그는 유월의 자란 모습이 내심 궁금했다. 
 유월은 조금 떨떠름한 기색으로 잔을 내려놓았다. 누가 자기 몸에 손을 대는 일이 얼마만인지 햇수로도 세기 벅찬 탓이다. 그것도 가끔 닿는 손이나 팔도 아니고−무려 얼굴인 것이다. 그는 조금 흐른 술을 입가에서 닦아내고는 긴장하여 뻣뻣하게 목을 세우고 허락했다. 더운 숨을 뱉는 얼굴과는 반대로 찬 손가락이 조심스레 양 볼을 감쌌다. 

 이런 얼굴이구나, 마들가리는 신기한 듯 두 손을 들어 얼굴을 만졌다. 아, 비늘. 두 남매에게는 또렷하게 보이지 않던 비늘이 유월의 얼굴에는 유독 뚜렷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지. 그의 기억 속에 있는, 그 새카맣고 반짝이던 비늘은 여전히 눈가에서 뺨으로 내려왔다. 그는 용의 흔적을 쓰다듬고는 조심스레 눈두덩이를 손바닥으로 만져 봤다. 그 순하고 귀엽던 눈이 이제는 바싹 얼어 있구나. 아직 통통하던 볼이 이제는 말라서 딱딱했다. “젖살….” 그는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말이야, “예전에는 이렇게까지 안 웃진 않았던 것 같은데.” 그는 양 입꼬리를 엄지로 늘려 보며 불만스레 말했다. 
 솔직히 그간 유월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속으로는 어린 유월을 떠올리기 마련이었다. 키가 큰 남자와 어린 아이의 모습 사이의 괴리감이, 손가락 아래에서 조금씩 메워져 갔다. 그는 마지막으로 −아주 오래전의−버릇처럼 정수리 부근을 쓰다듬고는 손을 뗐다.

 “이제 청년이라고 해도 믿겠군.”

 어린 동생이 잘 자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가 모르는 사이에서 이렇게 쑥 커서는, 자신과 키도 견줄 기세였으니. 그는 새삼 유월이 자신들과 헤어져 무얼 했는지 궁금해졌다. 아니, 사실은 전부터−달봉에서 헤어진 후부터− 궁금했다. 말하기 곤란할까 차마 묻지 않고 있었는데 왠지 오늘은 물어도 괜찮을 성 싶었다. 
 그는 유월이 그간 여행을 다닌 곳에 대해 물었다. 달봉에서 헤어진 후로 어디를 갔는지, 어떻게 살다가 여기까지 왔는지. “곤란하면 답하지 않아도 좋아.” 그는 재빨리 덧붙였다. 유월은 별 거 없었다며 입을 열었다. 그들의 앞에 다시 잔이 차올랐다. 




 3.
 오시(午時) 쯤의 내리쬐는 햇살에 유월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마셨지.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는 꽤나 잘 마시는 편이다. 그의 주량이 셀뿐더러 그 이상으로 마시는 일도 드문 탓에 파한 자리에 혼자 남기가 다반사였다. 그러니까, 이게 대체 얼마만의 일이더라.

 그는 어제의 기억을 되짚었다. 평소와 달리 진탕 취해서 마들가리에게 죽지 말라고 애원을 한 것부터(−왜 그런 소리를 했지, 그는 마른세수를 했다. 쪽팔려, 그렇게 취한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 주다니. 아. …아아아−) 마들가리가 저의 얼굴을 만진 거라거나, 자신의 여행담과 동굴 이야기, 그리고……. 

 유월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꽤나 취한 상태였지만, 그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마들가리는 정작 중요한 것에는 단 하나도 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무덤은 어디에 있는 거야? 그는 눈가를 꾹꾹 누르며 기억을 더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답은 해 주지 않았다. …그래, 그건 그럴 수도 있다. 무덤을 가르쳐주기 싫었거나, 아니면 아직 말을 꺼내기 벅차거나.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평소의 그라면 죽지 말라는 말에 무거운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려고 갖은 농을 던졌을 테다. 그는 그 이상할 정도로 침묵을 지키던 마들가리를 떠올렸다. 왜 거기서 대답을 하지 않았지? 그게 확신이 있고 없고 할 문제인가. 마들가리는 그때 어떤 얼굴이었지, 아쉽게도 그건 보지 못했다.

 뒤늦게 찝찝한 기분이 그를 감쌌다. 




 4. 
 한참 거슬러 올라가던 마들가리는, 제가 별 실수를 하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그는 그제야 안심하고 냉수를 들이켰다. 
 그는 차마 유월에게 무덤을 알려줄 수 없었다. 만약, 언젠가 그가 찾아와서는 마들가리를 발견한다면…. 유월의 주정이 귓가에 쟁쟁했다. 그건 너무 잔인한 일이다. 
 이제야 말하지만, 그는 사실 이 계획을 조금 망설이기도 했다. 남겨지는 사람의 마음을 아는 그는 훌쩍 떠나기도 미안했다. 하지만 그가 ‘떠나는’ 것을 사람들이 모른다면. 그건 완벽하지 않은가. 마들가리는 차마 그 속죄를 버릴 수 없었다.
 그는 누이를 죽인 무력한 자신이 끔찍하게 미웠다. 

 그리고 그만큼 유월에게 감사했다. 
 항상 꿈에서는 그 지독한 밤이 반복됐다. 그 끝이 없는 악몽은 그에게 잊지 말라는 듯 끊임없이 그의 죄를 상기시켜 줬다. 
그런데 유월을 만나고는, 가끔이지만 그 옛날 셋이 다니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유월과 누이가 손을 잡고 환하게 웃으며 바닷바람을 맞던 모습이. 문득 이 남매를 가리켜 가족이라고 생각했다며 말하던 모습이 덩달아 스쳤다. 
 내 아우가 되어 준, 상냥하던, 상냥한 아이. 

 마들가리는 그만 팔에 얼굴을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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