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 빡. 
 깜빡.
 마들가리는 잘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차가운 대리석이 볼을 누르고 있었다. 아니, 내가 대고 있는 거구나. 그는 방금―인지 오래전인지는 가늠이 잘 되지 않았지만, 그가 느끼기에는 바로 방금―전에 자신의 머리를 세차게 때린 돌덩어리를 바닥을 더듬어 잡았다. 어디서 날아온 거지, 그는 잠깐 의아하게 그것을 쓰다듬다가 곧 누운 자리에 온통 부스러기와 돌조각들이 주변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건물이 작게 울리고는 또 조금씩 흔들렸다. 건물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는 이것이 왕이 말하던 ‘신호’임을 알았다. 이정도로 격한 변화가 있을 거라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그는 얼얼한 뒤통수를 매만지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 연구원―전에 자신이 기절시킨―이 덩달아 나가떨어져 널브러진 쪽으로 다가갔다. 그대로 두고 가기에는 건물의 안쪽에서부터 화염이 넘실거렸다. 곧 4층 전체를 덮칠 모양이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는 한없이 부족한 호리병을 원망스레 만졌다. 꼭 이런 식이지, 중요한 순간에 항상 그는 무력했다. 그는 손바닥을 들어 연구원의 볼을 세차게 때렸다. 

 “보시오, 내가 이러기는 했소만, 편히 자기엔 상황이 좀 좋지 않소.”

 깨어나라, 좀, 기왕이면 빨리. 문으로 나가자니 불길이 번져 길이 곧 막힐 것 같았다. 그녀라면, 이 연구소 사람이라면 그녀는 지름길이나 숨겨진 문 같은 걸 알 테지. 여자의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곧 다시 그― 말하자면 못 알아듣겠는 말이 들렸다. 마들가리는 이 복도가 지금 환하길 바라며 이리저리 손짓을 했다. 

 너, 나, 여기, 4층.

 저쪽, 불, 크와앙, 호롤롤로.

 달리다, 아래, 밖.

 나, 눈, 안 보여, 너, 도움, 손잡다. 

 이해?

 여자가 한참 후에야 망설임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들가리는 그녀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그는 흘끗 뒤를 돌았다. 저 불길의 시작에서 여울과 왕, 그리고 호빈과 유월의 기운이 느껴졌다. 잘 도망치겠지, 왕의 능력이라면. 그는 짧게 그들 모두에게 행운을 빌며 연구원이 옷깃을 잡아끄는 대로 따라갔다.
 연구원은 뭐라고 중얼거리며 전혀 있는 줄도 몰랐던 문을 쾅 하고 들이받아 열었다. 

 “오.”

 마들가리가 손뼉을 치자 그녀는 다급한 손으로 그를 당겼다. 그는 그 행동에서 조급함, 불안함을 느꼈다. 
 어째서? 
 건물은 4층밖에 되지 않는다. 붕괴는 4층부터 내려오고, 우리는 지름길을 통하고 있다. 자신이야 눈이 안 보인다지만 그녀는 상황을 볼 수 있지. 뭐가 그리 무서운 걸까? 마들가리는 거의 날듯이 계단을 뛰어 내리며 생각했다. 그리고 곧 아래층 계단을 막은 기운에 다시 ‘아하.’하고 끄덕였다. 

 이 아래층으로 가는 층계에는 괴물이 있었다. 

 “그러니까, 댁들이 괴물을 만드는 건 사실이었군 그래.”

 왕의 추리―일까?―중 적어도 하나는 맞았다. 그는 몇 번이고 맡았던 익숙한 악취에 순간 이상한 충동이 일었다. 할 수 있어, 그는 작게 속삭였다. 마들가리의 한 손이 허리춤을 쓸었다. 차게 질린 게 손인지 병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딴 연구를 시작한 놈들이 옛날 누이와 같이 불꽃과 건물에 깔려 괴물과 함께 바스라진다면. 저를 지금 끌고 있는 이 말도 안 통하는 여자를 그렇게 만들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그의 ‘입맛’에 맞는 것이 있을까?
 그는 그 야릇한 목표를 지금 달성할 수 있었다. 그것도 아주 손쉽게. 
 그는 급하게 앞서던 여자의 팔을 잡았다. 여자가 그를 돌아봤다. 
 마들가리의 손에 차가운 날이 잡혔다. 

 “고개를 숙이시오.”

 마들가리는 그렇게 말하며 창을 세게 날렸다. 마구잡이로 언 것이 연구원의 볼을 스쳐 괴물의 목을 꿰뚫고 지나갔다. 

 “…이대로 내려가면 되겠소.”

 놀란 여자가 곧 다시 마음을 잡고 앞을 향했다. 
 그는 억눌렀다. 괴물들이, 혹은 그걸 만드는 것들이 이 아래로 깔리는 걸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이 이상은 그의 과욕이었다. 

 그는 차가운 바깥 공기를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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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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